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 웅진지식하우스

by 정작가

아름다운 책이다. 그냥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한계성을 절감할 만큼. 그에 비해 제목은 너무 도발적이다. 책을 읽고 있는 여자가 위험하다니 영 제목이 마뜩잖다.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는 책 읽는 여자의 모습을 명화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그것은 바로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내는 주는 것으로서 책 읽기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명화 중에는 아주 익숙한 것도 있긴 하지만 낯선 것들이 더 많다.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는 생경한 것들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또 한 편으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한 편의 명화와 그에 따른 해설을 보면서 명화를 감상하는 것으로 책 읽기라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과 역자들의 단상이 담겨 있는 ‘조이한 · 김정근의 책 읽기와 여자’는 그런 작업에 풍성한 해석을 불어넣어 줄 역할에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도발적인 제목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유추해 보면 여기에 소개된 명화가 여성의 인권 신장이 이뤄지지 않았던 시대의 산물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제목이 그런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면 이해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우선 ‘저자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은 다른 책들과는 대조적으로 50페이지 이상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만큼 배경지식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소제목인 ‘독서란 비도적이며 위험한 것’,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독서가 시작되다’에 해당되는 내용을 읽어보면 우리가 미처 알고 있지 못했던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 등장하는 여자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중요한 것은 청초한 소녀에서부터 노파, 궁중복장을 한 여인에서부터 나부(裸婦)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그림은 세 편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의 「책 읽는 여인」, 프란츠 아이블(1806~1880)의 「독서하는 처녀」,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1797~1869)의 「독서하는 소녀」가 그런 작품들이다.


이 책은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각기 다른 시대에 독서하는 여인들의 자화상을 조명한 책이다. 그림을 통해, 억압받았던 시대에 태어나 숨죽이고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펼쳤을 여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노라니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결코 허투루 형성된 것이 아님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여인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제대로 책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더욱이 독서와 관련된 내용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책과 그림의 예술적 통섭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독서를 한다는 것이 자유와 동일시되었던 시대적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책을 손에 넣고 책을 읽었던 여인들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여권신장(女權伸張)이 된 사회를 살고 있게 된 것은 아닌지. 아직도 지구상 곳곳에는 남녀차별로 인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독서는 그런 차별적 요소를 붕괴시킬 수 있는 희망의 변주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비단 그 모습 때문만이 아니라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기의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각고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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