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김영란 / 창비

by 정작가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는 창비에서 발간한 ‘공부의 시대’ 시리즈 중의 하나로 강연한 내용을 주제로 엮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영란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크게 이슈가 된 국민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소위 ‘김영란법’의 입안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법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이 된 이력으로도 유명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공부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책읽기의 쓸모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책머리를 보면 공부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공부는 두 가지로 나뉠 것 같습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직업이나 하고 있는 일(또는 하고자 하는 일)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무관하지만 자신의 삶을 성숙시켜주는 공부입니다.


저자는 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 하는 강의는 차치하고 자신의 삶을 성숙하게 하는 공부의 표본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막심 고리끼라는 작가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 작가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공부의 진수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소개한 그의 3부작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년 시대> <사람들 속에서> <나의 대학>


자신의 삶을 성숙하게 하는 공부로서 저자는 직업과 무관한 책 읽기를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유일한 투자였다고 술회한다. 고로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는 역설적으로 ‘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쓸모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책 읽기였을지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삶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음을 새삼 깨닫는’ 책읽기였으니 다시 말하면, 진정으로 쓸모 있는 책 읽기로 귀결되는 독서를 한 셈이다.


이야기가 지닌 힘의 가치를 일찍부터 체득한 저자는 유년시절부터 동화책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언급하는 등 그와 관련된 배경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된다. 제명도 생소한 <토니오 크뢰거>를 비롯하여, <흡혈귀의 확장> <고슴도치와 여우> <시적 정의> <빼앗긴 자들> <바벨의 도서관> 등의 책을 소개하며 펼쳐가는 지적 사유의 장은 말 그대로 품격 있는 독서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책 읽기를 통해 사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이런 지적인 유희의 시간이 고역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강의 내용이 난해했던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는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여러 권의 책들을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여정에 동참해야한다는 부담감을 준다. 저자의 방대한 사유와 깊이는 책을 읽는 내내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저자가 소개한 책 제목을 몇 권 기억한다는 것만으로 작은 위안을 삼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강의 현장에서 묻고 답한 내용들은 ‘묻고 답하기’ 코너에 그대로 담겨 있는데 여기에서도 책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는다. 이런저런 질문이 있었지만 주로 독서, 책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시금 책의 목록을 추출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본다.


- <돈끼호테> <동물농장> <파리 대왕> <미하엘 콜하스>와 같은 소설류

- <블루드레스>, 원제 ‘법과 삶의 기묘한 연금술’. 법 자체를 다룬 책

- 오오에 켄자부로오 <말의 정의> <읽는 인간> <‘새로운 사람’에게>

- <닐스의 신기한 여행> <허클베리 핀의 모험> <루쉰 전집>. 학창시절에 읽은 책

- 장 그르니에 <까뮈를 추억하며>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 에드워드 싸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겨울이야기>

- 소포클레스의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 베르디의 <오델로> <팔스타프>

- 입센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김영란법’의 주창자인 저자의 독서 편력을 살펴보면 그 방대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움직이는 힘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독서가 기초가 되었다는 것은 단순하게 저자가 소개한 독서 목록만으로도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책 속으로의 여행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애의 경지’를 향해 가는 여행이었다고 밝히고 있는 저자의 말을 통해 그동안 간과하고 살았던 독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독서를 통한 사유와 사고의 깊이에 경도되어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드는 이 책이 새로운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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