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 / 명진출판

by 정작가


근 25년 전에 발간된 책을 지금에서야 읽는 건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지가 몇 년 안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미술의 가치를 발견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창작자로서 미술에 접근해보니 녹록치 않다는 것 또한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다. 물론 주체적으로 예술적인 재능을 발휘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것 또한 나름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국내 최초 그림 DJ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젬마의 자전적 삽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저자의 감성이 녹아있는 책이다.


책표지를 보면 단정하게 가르마를 한 채 무언가를 응시하는 여인이 있다. 한 손으로는 책을 집고, 한 쪽 손목은 책에 기댄 채. 다소 도발적인 듯한 이 사진은 저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측면에서는 성공한 느낌이 든다. 다소 이지적이며, 예술적인 카리스마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차갑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묻어나지만 막상 책을 읽다보면 그런 것과는 상반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림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이런 책을 보면 왠지 전문가가 아니면 범접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따스하게 물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설명 한다기보다는 읽어준다는 느낌이 적절할 만큼 그 누구라도 그림을 보고 느꼈을 주관적인 감성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만하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꾸미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솔하게 자신의 느낌을 그림 속에 체화시킨다. 그림을 통해 일상의 한 단면을 떠올리기도 하고, 에피소드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림은 그렇게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더러는 아는 작가의 작품도 눈에 띄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처음 대하는 화가들이 많았다. 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얼마 안 되는 초년생의 시선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런 난해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생경함이 주는 즐거움은 컸다. 획일화되지 않고, 어떤 틀에 갇혀져 있지 않은 자유분방함, 그런 것이 미술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대부분 회화를 다루고 있지만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처럼 조각 작품도 있다. 흔히 보던 정물과 풍경은 오히려 찾기 힘들고, 흔히 접할 수 없는 장르의 작품들도 많았다. 마치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세상의 모든 것에 흥미를 보이는 것처럼 책 속에서 보이는 모든 예술 작품들이 생경했지만 경이로워 보였다.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보는 이에 따라서 그 느낌은 달라진다. 미술학도가 보는 그림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안목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조금이라도 그림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설명해준다면 미처 보지 못했던 시선으로 예술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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