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국 / 유유
필사는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실천하기 힘든 몇 가지 일들 중의 하나다. 필사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누구는 필사의 가치를 명상의 가치에 비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글을 필사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던 차에 필사에 관련된 책과 만나게 되었다. <필사의 기초>라는 책이다. ‘좋은 문장 잘 베껴 쓰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문고판 크기의 작은 책이지만 필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저자는 헌책방지기다. 그런 저자가 평범한 언어로 써내려간 일명 ‘필사론’은 이해하기도 쉽다.
<필사의 기초>는 저자가 필사를 시작한 배경에서부터 필사를 사랑하는 이유, 필사에 대한 생각들을 가감 없이 풀어낸 책이다. 편안한 필사의 자세, 문방구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지만 필사에 정작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교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도 옮겨 쓰고 싶은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니 그저 참고할 정도의 수준이면 되겠다. ‘그는 쓰고 있었다 - 작품 속, 역사 속 필사 이야기’에서는 9명의 작가에 대한 필사와 관련된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위대한 작가들의 필사 습관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도 필사에 대한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보자면 아무래도 ‘베껴 쓰기를 넘어 - 필사는 자기 글을 쓰기 위한 디딤돌’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사를 단순히 ‘베껴 쓰기’라고 생각한다면 고정관념입니다. 필사는 결국 자기 글을 쓰기 위한 디딤돌입니다. 좋은 글을 베껴 쓰다 보면 나중엔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필사(筆寫)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쓰는 필사(筆思)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그렇다. 필사의 목적은 그저 남의 글을 베껴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의 생각을 글로 옮겨 쓰기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인식하고 행하는 의식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완벽한 필사의 정의만으로도 이 작은 책이 주는 메시지는 자못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