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대 / 슬로래빗
이 책의 원제목은 ‘무일푼 막노동꾼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막노동꾼이라고 해서 글을 못 쓸 이유가 없겠지만 우선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냐하면 막노동꾼이라고 하면 힘든 노동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 일 테고, 그런 환경에서 글을 쓴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흔히들 노가다라고 하는 막노동은 몇 번 경험해서 봐서 알지만 그 강도가 상당히 세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고 나면 그야말로 곯아떨어지기 일쑤고 그런 와중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굳이 글을 써야 했던 이유는, 나아가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고 권고하는 이유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나 또한 힘든 시간들을 글을 쓰며 버텼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 책을 고르고 읽었다.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책날개를 장식할 법한 화려한 이력은 온데간데없고, 전과자, 파산자, 알코중독자라는 내세울 것도 없는, 아니 내세우기조차 부끄러운 그런 이력만이 덩그러니 책날개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과거 이력이라도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하면 ‘국내 최고의 기업에 다니는 잘 나가는 샐러리맨’이라는 수식이 고작이다. 이런데도 굳이 저자가 자기의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책을 낸 데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이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동기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들어가는 글을 보면 ‘이런 처지에도 글을 쓴다’는 아주 짤막한 글이 책의 시작을 알린다. 자기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글을 쓴다는 사실을 이처럼 간명하게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저자의 진심이 읽힌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다. 말 그대로 담백하다. 목차를 대략 요약해 보면, 저자에게 글쓰기는 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고 글쓰기에 비법은 있을 수가 없으며 글쓰기를 방해하는 핑계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진정으로 글쓰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말하고 있다.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을 사업을 한답시고 다 날리고, 채권자들의 압박이 심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난 후에 그가 한 일이라고는 가족이 걱정되어 매일 편지를 쓴 일뿐이란다. 하지만 저자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감옥에서 라고 한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옥에서 쓴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감옥이라는 환경이 한 인간의 자유를 옥죄는 곳이기는 하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그런 악조건에서도 열정적인 산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게 환경은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가 ‘글쓰기를 방해하는 핑계들’이라는 장을 마련한 것도 본인의 치열한 경험에서 파생된 생각임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제2장에 소개된 ‘글쓰기가 필요한 13가지 이유’다. 물론 사람마다 글쓰기의 필요성은 다르겠지만 심각한 악조건에서도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저자의 심정에 감응한다면 분명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개략적으로 저자의 심정을 통해 글쓰기가 필요했던 이유를 유추해 보면 글쓰기를 통한 문제 찾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현실과 마주할 용기를 얻고, 부정적인 내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중요한 과정이 글쓰기라면 저자가 주창한 것처럼 남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솔직하게 진정한 ‘나’와 마주해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감정의 배설을 경험하고, 객관적으로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더 이상 글쓰기의 중요성을 논하지 않아도 될 만큼 큰 소득을 얻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많은 것이다. 저자도 다양한 직종의 사례를 들어놓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가는 것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저자와 여러 가지 여건과 상황은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글쓰기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상처받아 아픈 마음을 위무하고, 자신을 돌아보길 원한다. 절망에 사로잡혔을 때 희망을 갖길 바라고, 쓰러져 갈 때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찾게 되길 소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