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권력이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그때의 권력은 텔레비전에서 나왔다. 적어도 아이들의 세계에선. 흔히 텔레비전을 한 번 보려면 주인집 아들과 잘 사귀어 놓아야 한다는 말이 결코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텔레비전에 대한 동경은 커져만 갔다.
이웃집의 마귀할멈처럼 생긴 아줌마는 우리가 가면 곧잘 텔레비전을 끄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시끄럽게 본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긴 남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얻어 보면서 감정의 발산을 하는 것 자체가 주인의 입장에서 눈꼴이 사나울 수도 있을 일이었다. 그럴 때면 그저 침묵으로 주인아줌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빨리 텔레비전이 켜지기를 고대하면서.
그날도 누나를 따라 텔레비전을 본다고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걸어갔다. 굳이 따라오지 말라는 것을 기어코 쫓아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누나는 친구 집에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옆에 다가와 앉은 것 같은 산은 어두컴컴한 형체만이 음산한 기운을 품어내고 있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밤새소리만이 어두운 밤의 침묵을 깨고 있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휙' 소리가 들리더니 조그마한 돌멩이가 발 앞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가? 그날 알았다. 내가 바랐던 것은 텔레비전이 아닌 누나의 발자취였다는 것을. 그리고 더 이상 그 발길을 쫓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돌멩이는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이 집의 방안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된 것은 친척이 쓰던 텔레비전을 가져오면서부터였다. 기껏해야 15인치가 될동말동한 텔레비전이었지만 세상 그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동네 꼬맹이 녀석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수시로 우리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려려니 했다. 그런데 점차 이 녀석의 행태가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이며, 낮이고 밤이고 마치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시절만 해도 텔레비전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텔레비전 구경을 간다는 것은 큰 결례가 아닌 일종의 관습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애지중지하던 텔레비전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퍽 기분 나쁜 일이었다. 더군다나 수시로 찾아오는 것도 얄미운데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대책 없이 웃어대는 통에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하라고 경고를 해도 먹히지 않았다. 녀석은 텔레비전에 푹 빠져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 전원 플러그를 빼 버린 것이다. 순간 화면은 사라지고,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순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옆집 마귀할멈 같은 아줌마가 되어버린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