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by 정작가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 날 흉측한 벌레가 되어버린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 또한 다소 현실 세계에선 무리인 듯한 천사의 등장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더군다나 그 천사의 몰골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아우라를 발산하는 신비한 대상이 아니라 ‘몇 가닥 퇴색한 머리칼이 붙어’있는 지경이라면 이 소설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산산 조각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런 천사와 같은 인물은 유랑극단에서 ‘부모를 거역해 거미로 변한 여자’ 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똑같은 충격을 안겨준다. 이런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들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전복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도 우리가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도 성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성적소수자라든지, 최근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난민, 새터민들이 가끔씩 매스컴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일원이면서도 낯선 이방인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이 소설에서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처럼 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천사의 상징인 날개를 가진 노인조차도 이방인이나 낯선 세계에서 온 불청객처럼 여겨 ‘철망이 쳐진 닭장에’ 가두어 놓기도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교구신부는 엄연한 천사의 행색을 하고 있는 노인을 보고서도 날개가 천사와 악마를 구별하는 필수요소는 아니라고 하며 교황청의 재가를 얻어야 그 노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우리는 단지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들만이 실제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아니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인데도 사회적인 통념과 교육, 역사 등을 이유로 현실을 부정하는 사례도 종종 접하게 된다. 세상엔 다양한 가치가 있고, 그런 가치들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단지 편향된 감각 기관을 통해 인식한 것들만 추종하게 된다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안목은 정체된 채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것들만 보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천사의 비상을 보고서도 물끄러미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 안에 넣고도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가치의 문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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