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모 / 보리
책을 읽다 보면 독특한 이력의 저자를 만날 때가 있다. 물론 식자층들만 글을 쓰는 시대는 아니지만 글쓰기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을 접할 때면 경탄할 때가 많다. <삐딱한 글쓰기>의 저자 안건모가 그렇다. 앞날개 지은이 소개 글을 보면 이 십 년 동안 시내버스 운전사로 인한 저자가 ‘책을 보면서 사회구조가 삐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평불만이 많은 운전사로 변했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부자들, 권력 있는 자들만 글을 써서 이 세상이 오른쪽으로 삐딱해진 것을 깨닫고’ 글을 쓰기 시작했더란다. 투박한 표현이지만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 덕에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라는 글을 써서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고, 지금은 버스 운전을 그만두고 <작은 책>이라는 책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또 다른 책,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저자가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삐딱한 글쓰기>라는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민초들의 함성들이 응집되어 구호를 만들어내듯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문학적인 기교나 예술적인 감각은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 또한 글쓰기의 교본이라는 범주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저자가 현실 생활에서 얻은 경험들을 토대로 한 글쓰기 작법서라는 측면에서 가치를 부여한다면 기존에 흔히 보아오던 이론 위주의 글쓰기 교본과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생활 글’이다. 이는 그동안 시나 소설 같은 문학적인 글쓰기만을 강조했던 교육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생활 글은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만큼 고급적인 기교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글쓰기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역설(力說)하고 있는 것처럼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예술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생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한다. 설사 문학적인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글과 삶은 일치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가 있다.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시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간명하다. 일제침략기에 비참한 현실을 외면한 채 농촌 마을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것이 시(詩)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무릇 작가라고 하는 것은 시대의 아픔도 알아야 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도 있어야 한다는 소명을 일깨우려는 의도인 것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유명한 알퐁소 도데의 <별> 또한 목동과 주인집 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낭만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봉건 사회의 신분 격차에 따른 시대의 아픔을 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민태원의 <청춘예찬>, 피천득의 <수필>,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와 같은 글들에 대한 비판은 이어진다. 그만큼 저자가 글이라는 것이 그저 예술적인 가치로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고, 사회 비판의식을 기르는 데도 한몫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이유는 아니었을까?
<삐딱한 글쓰기>라는 책 제목처럼 이 책은 여타 글쓰기 책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에 대한 맹공을 퍼붓고, 비판의식을 고조시키는 측면도 있다. 글쓰기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비판 의식만 있어서도 곤란하겠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현실을 외면한 채 미적인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도 글쓰기의 본질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삐딱한 시선은 작가에게 있어서 필수요소다. 문학적인 용어로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이 있는 것처럼 고정된 시선보다는 약간은 비틀린 시선이 본질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언급한 거짓 시와 진짜 시를 보자.
어느새
매끄러운 얼음판을
씽씽 내닫는 걸 보면
바람도 우리들처럼
무럭무럭 자라나 봐
1학년 아이들이
미끄럼 타고 놀면서
지들끼리 좋다고 난리다.
한참 보다가 자리 앉아
문제 푼다
아, 정말 깝깝하다
그냥 읽기만 해도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시(詩)다. <삐딱한 글쓰기>는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시대에는 아름답고 고상한 글보다 삐딱한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