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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쓰는 책

천년습작

김탁환 / 살림

by 정작가


<천년습작>을 읽고, 천년습작이라는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였다. “인간은 누구나 ‘백 년 학생(百年學生)’입니다. 글쓰기에 뜻을 둔 이라면 ‘천년습작(千年習作)’을 각오해야겠지요”라고 한 작가의 꼬리말을 읽고 나서야 그 의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평생을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도 어렵지만 그만큼 글을 쓰는 것은 더 어렵다는 뜻에서 나온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부제처럼 글쓰기 강의를 담고 있는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강의는 언제 들어도 어렵다. 명쾌한 해답도 없고, 지름길도 없다. 이 책에서도 그런 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구성을 보면 강의라는 형식이 무색하게 한 편의 소설을 읽어나가듯 자연스럽다.


<천년습작>이 다른 글쓰기 책과 색다르게 느껴지는 건 글쓰기 강의를 작품에 기대어 풀어가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테크닉’과 ‘필요’에 따라 구성한 책의 형식을 지양하고, ‘인생을 값지게 만드는 인류사적 행위’로 파악하려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있다.


글쓰기를 단순히 기교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면 이론적인 고찰이 주를 이루는 딱딱한 교재가 될 수밖에 없다. <천년습작>이 마치 몇 편의 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처럼 재밌게 읽히는 것은 강의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던 이유가 크다. 이를테면 <발자크 평전>이나 <릴케의 로댕>처럼 작가를 위주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고, <원미동 사람들>처럼 한 작품에 중점을 두기도 한다. 혹은 상반된 내용을 주제로 한 영화를 통해 글쓰기 강의에 접근하기도 한다.


다만 교본으로 삼고 있는 텍스트를 인용한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저자의 고유한 글쓰기 철학을 희석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여태까지 보아오던 글쓰기 교본의 고정관념을 깨고, 전혀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 교재를 접하게 된 느낌은 신선하다고 할만하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많다. 나 또한 많은 책들을 읽기는 했지만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책이 문제라기보다는 독자의 역량을 탓해야 할 일이지만 그만큼 근시안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이는 글쓰기가 단순한 기교나 방법을 습득하는 등 단편적인 것에 기대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피력한 것처럼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값지게 만들 수 있는 방편으로서의 접근이 좀 더 진솔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원천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탁환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불멸의 이순신>이다. 이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서인지는 몰라도 오래전 개봉한 <명량>은 우리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남게 되었다. 드라마를 성공시킨 원작 소설을 쓴 작가가 구현해 내는 글쓰기 강의는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천년습작>을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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