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면서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자기를 표현한다는 차원에서 그림은 그저 모사를 잘하는 능력이 아닌 생각과 관념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확장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과제물을 제작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과제는 디지털 드로잉으로 ‘컵 강아지’를 그렸다. 집 안에서 자주 보던 사물을 그리는 차원에서였지만 거기에 담긴 사연과 새로운 기법의 디지털 드로잉에 의한 표현은 낯선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평소에 색감에 둔감했던 터라 디지털 색감에서 발산하는 표현의 다양성은 손 드로잉에서 미처 맛보지 못했던 기쁨을 주었다. 두 번째 과제는 손 드로잉으로 풍경 그리기였다. 야외스케치에 나가면서 주로 자연 풍경을 그려본 적은 있으나 주변에서 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렸던 풍경을 그렸던 적은 흔치 않았다. 그렇게 책상이 있는 서재의 한 공간을 그려 과제물로 제출했다. 흔히 보았던 풍경을 도화지에 담는 동안 유심히 살피지 못했던 물체의 특성과 그런 물체가 배치된 과정들이 떠올랐고, 물건 물건마다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연이 담겨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유심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없었던 내게 이번 과제물은 그런 일상 풍경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세 번째 과제는 자유 주제를 활용한 일러스트레이션이었다. 이번 과제는 제법 색감도 활용하고, 과제물의 완성적인 성격이 있어서 색다른 장르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내볼까 마음은 있었지만 색상이 있는 그림을 그려 본 지도 오래되었고, 엄두가 나지 않아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출할까 고민이 컸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한 뒤에 집 안에 자주 보았지만 결코 일상적인 않게 보였던 ‘정의의 여신상’을 그려보겠노라 마음먹었다.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한 손을 칼을 든 여신상이다. 세상에 정의를 주재하는 여신이 있다면 세상이 그리 혼탁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바람을 가지고 그려 본 ‘정의의 여신상’은 정의의 가치에 대해 한동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기교를 통한 작품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 속에 잠자고 있는 생각을 깨우고, 이를 토대로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색다른 표현의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미적인 감각은 비단 기교에서 끝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는 수단으로써도 활용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한 획, 한 획과 마주치는 생각의 흐름, 각기 다른 색상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때론 전시장에서 그림을 접하면서 어쩌면 이토록 소재와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미술이라는 분야는 그야말로 다양성의 천국이라는 생각을 해봤었다.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학우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도 그런 생각은 유효했다. 그만큼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각기 개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로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통해서 자기의 주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그런 가치를 인식할 때 각 개별적인 특성이 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틀에 얽매인 채 그 개성과 가치를 부정당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이렇듯 창작 활동이 주는 가치는 크다고 하겠다.
자기표현 방식의 한 방편으로서 일러스트레이션은 그것이 미술의 한 장르라는 것 외에도 아주 원초적인 인간의 표현 방식의 원류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것을 우리 삶과 밀접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이 사고하는 능력의 최선봉에 서 있는 글자의 발명 또한 그림이 생겨난 지 한참 후의 일이라면 우리에게 그림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런 그림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표현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어떤 장르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기교의 숙달에 앞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막연히 그림을 그리기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정리한 후 표현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은 단편적인 기능으로서 주어지는 미술의 가치를 배가시킨다. 이번 수업에서 세 차례 텍스트를 통한 질문 형식에 답하는 과정은 그런 의미에서 생각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안에 대해서 생각하고 사고의 과정을 거쳐 돌출된 생각의 파편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제되고 정리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것은 마치 회화의 완성을 앞둔 창작자의 희열만큼이나 정돈된 인식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그런 토대의 바탕 위에서 탄생한 회화가 다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예술품으로 자리하게 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창작자에게 사고하는 능력이란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필수적인 영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고로 현대미술의 흐름이 관념적으로나 형이상학적인 개념 인식의 예술로 승화되고 있는 것은 인간이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대상을 모사하는 것이 사진의 탄생 이후로 큰 의미를 상실해 버린 이유도 클 터이다.
<크리에이티브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수업을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어떤 기교나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과정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오히려 한두 주씩 수업을 수강하게 되면서 그와는 상반된 목표로 설계된 수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인간의 생각이 고도화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작업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지적능력과 감성, 사고력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무조건적으로 기교를 익히는 것보다 그에 앞서 그림에 대한 고유한 생각과 의식이 선행되어야 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수많은 질문과 맞닥뜨리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예술이 인간의 삶을 성장,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귀결된다. 처음에 다양한 물음에 직면하게 되면서 과연 이런 물음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반신반의한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물음에 답하는 과정들이 결국은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고, 존재론적인 물음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유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예술은 시대의 흐름을 앞서간다. 그런 예술의 속성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뽑아 올린 예술품의 가치를 빛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런 예술품을 감상하는 대중들의 의식을 깨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고로 예술가는 대중의 선봉에 서는 부담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생각의 흐름은 의식을 깨우고 그런 의식 속에서 탄생한 작품은 대중의 의식을 깨운다. 대중도 처음에는 미적인 감각에 경도되어 작품을 감상하지만 결국엔 그 속에 담긴 작가의 보이지 않는 의식과 사고의 흐름에 젖어들게 되고, 그것은 그 자체로서 의식의 혁명을 일으키게 만들지도 모른다.
한 편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감각 중 하나인 시각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살아온 세월 동안 숱한 경험을 통해 느꼈던 감각을 재편하고 선택적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에서 그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일러스트레이션>은 일러스트에 관심을 갖기 위한 방편으로 수강한 수업이었지만 그보다 창작자의 기본자세와 그에 걸맞은 가치관 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던 생각 수업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속에 숨겨진 수많은 생각의 숨결들이 모아져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었다면 한 편의 그림은 그 자체로서 보이지 않는 의식의 집합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고로 일러스트레이션은 고도화된 의식의 표현 장르로 봄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