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개론

예술 철학 입문 / 앤 셰퍼드 / 동문선

by 정작가


미학이란 다소 생경한 학문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그 효용성이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최근 K-POP의 주도적인 성장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의 미적 감각은 더욱 섬세해지고 다변화되고 있다.


<미학개론>은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다. 하지만 그 난해성에 비추어 쉽게 첫 장을 열 수 없어 책을 방치하듯 보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시대의 흐름을 볼 때, 더 이상 미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된 것 같아 무겁게 책을 펼쳤다. 예상처럼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젖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예술철학입문’이라는 책의 부제 또한 그런 어려움을 더욱 부채질하게 만들었다. 미학이라는 학문이 철학의 갈래에서 파생되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사상을 알지 못하고서는 이 책을 이해할 수 없겠다는 선입견도 한몫했다.


흔히 개론서라고 하면 그 분야의 기초를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미학개론> 또한 그런 범주에서 기획된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독자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저작으로서는 다소 무겁게 느껴진다. 책의 두께가 비교적 얇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내용이 다소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책을 계속 읽어나갔던 것은 전통적으로 한 권의 책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한몫했다. 흔히들 독서가에 따라서는 책을 읽다 재미가 없으면 그냥 덮어버리라고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해 뭔가를 알려는 차원에서도 선택한 책이니만큼 제법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나가긴 했다.


이런 유의 책들이 다소 내용 해독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철학서적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원전이 외국어라 이를 다시 번역한 문체를 소화해야 하는 이중고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서를 읽을 때면 느끼는 생각이지만 어떤 책은 국내 서적을 읽을 때처럼 큰 부담 없이 다가오는 책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책은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철학을 다루는 책이다 보니 다소 어려운 개념어의 사용으로 미학이라는 학문을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번역체도 다소 만연체다 보니, 한 문장을 몇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래저래 책을 읽어나가긴 했지만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효용성이 없던 것은 아니다. 미학이라는 학문이 결코 범접하기 쉬운 분야가 아니라는 반면교사로서의 깨달음은 얻을 수 있었으니, 좀 더 긴장감을 가지고 접근해야겠다는 나름 의지는 더욱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미학개론>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도 다소 형이상학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첫 장 ‘왜 예술을 추구하는가?’라는 장을 제외하면, 모방, 표현, 형식, 예술, 미, 미적 감상, 비평, 해석, 평가, 의도와 기대, 의미와 진실, 예술과 도덕처럼 기본 개념을 탄탄히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소 현학적인 주제가 많다. 나름 저자의 입장에서는 풀어서 설명을 한 것이겠지만 전술한 것처럼 번역체의 문장을 읽다 보니 내용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 이해의 차원에서는 몇 번이고 내용을 곱씹어야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 정도라면 과연 이런 책을 왜 읽어야 할까, 고민해 볼 여지도 있긴 했다. 하지만 개략 미학의 개념 정도만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책 읽은 보람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1장에서는 이 책의 개략적인 내용을 짚어주고 있다. 예술을 왜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자연스럽게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되고,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를테면, 모방 · 표현 · 양식이 그런 주제일 수 있겠다. 다음은 필자의 집필 방향에 대한 언급이다.


필자는 특정 주제에 관한 기존의 견해를 해설하기보다는 이들은 논쟁에 끌어들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연구하거나 방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활용하였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술이 모방이라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예술개론서에서 이 개념을 빠트리지 않고 언급하는 것은 예술을 다루는 데 있어서 모방이라는 것이 중요한 테제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언급한 침대의 형상은 곧잘 이데아를 창조하는 철학자, 침대를 만드는 목수, 침대를 그리는 화가로 층위를 나누며 사물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술가는 거울을 자연에 비추어 보고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속임수와 같은 환상을 만들며, 모방한 것을 다시 모방하여 너무나 형편없는 물건을 만든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은 훗날 수정을 거쳐 예술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모방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형체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어려운 분야가 나타남으로 인해 논란의 종지부를 지었다. 플라톤이 사용하는 모방을 의미하는 미메시스(mimesis)가 곧잘 재현(representation)으로 번역되는 이유는 이 단어가 예술적 맥락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모방이란 말이 ‘예술 작품과 세계의 관계가 모방과 모델의 관계임을 뜻한다’고 하는 지면의 언급에서도 재현과의 차이점을 다투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결국 이는 인식의 차이임을 직관하게 된다. 결국 이런 두 가지 개념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동질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모든 예술을 재현으로만 볼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기에 좀 더 숙고해 볼 여지는 있을 것이다.


예술의 속성 중 하나인 ‘표현’ 또한 논란이 많은 개념 중 하나이다. 예술을 단순히 표현의 영역이라고만 한정할 수 없는 복잡성이 예술의 속성에는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톨스토이의 이론과 크로체와 콜링우드의 표현 관련 이론에 대한 논쟁을 다루고 있다. 또한 예술 표현의 특성에 부합되기 어려운 장르인 음악에서 재현보다는 형식적 특성을 선호한다는 측면을 부각하며 자연스럽게 ‘형식’의 장으로 넘어간다.


예술의 형식적 특성을 고찰하는 일 또한 다양한 관련 이론들과 분야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예술의 형식적인 의미를 재단해 볼 수 있는 것은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음악과 미술은 그런 가치를 더욱 심화시키는 장르로서 미학으로서의 형식이 어떤 식으로 예술 속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명징하게 드러내준다.


그러면 좀 더 심층적인 관점에서 예술, 미, 미적 감상에 대한 키워드로 미학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적 감각의 대상을 예술품에 한정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적 감상의 대상은 인간의 오감에 의해 지각되는 다양한 자연물과 인공물을 포함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모방이나 재현의 결과물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규정한다고 하면 자연은 그 자체로서 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이런 이론들로 인해 모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논란을 정리해 주는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술의 모방 이론이나 표현 이론은 작품을 의도적으로 계획한 예술가의 존재를 암시하지만, 형식주의는 예술 작품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킬 뿐 제작자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예술을 모방, 재현, 표현, 형식의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했을 때 형식 위주의 접근 방식은 자연물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이론적 접근이 미적 가치를 담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적 감상이란 정서적 요인과 지적 요인이 관련되는 복잡한 문제이다.


미적 감상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예술의 미를 규정하는 이론들은 온전히 미적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간다. 칸트나 쇼펜하우어가 주창하는 관련 이론들이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그만큼 미적인 가치 규정이 난해한 문제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비평, 평가,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논쟁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단순한 미적 감상의 범위를 넘어 예술로서 가치를 재단하여 비평하고 평가와 해석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적 평정을 위해 다양한 작품들이 해석 자료로 등장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오이디프스왕》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미들마치》 《황무지》 《시학》 《템페스트》 《나사의 회전》 등 이런 예술적 완결성을 검증받은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합리적인 시선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예술의 미학적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접근 방식에는 의도와 기대, 의미와 진실, 예술과 도덕의 의미를 고찰해 보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이 부분은 워낙 난해하고, 고차원적인 사유를 요하는 것이라서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살펴볼 이유는 충분하겠다.


책 뒤표지의 ‘지적 욕구의 자극제 – 제대로 집필된 알기 쉬운 개론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미학 개론의 저자 앤 세퍼드는 미학의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집요하게 탐구한다’는 상호 모순적인 어법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 저작이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앤 셰퍼드의 <미학개론>은 여러 번 읽고 또 읽어봐도 난해한 책이다. 번역체라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확실히 철학을 다루는 저작이라 그런지 관련 배경지식이 없이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더욱 그렇다. 애초에 번역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미학과 관련 이론조차 제대로 섭렵하지 않고 무작정 미학에 세계를 덤벼든 독자의 무모함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학문의 여정은 끝이 없다. 학문의 속성대로 알면 알수록 그 방대함에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 녹록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라고 본 것이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할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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