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석탑

화강암 나라의 독창적인 불교미술

by 정작가


독창적인 불교미술로서 석탑은 우리 유물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화강암이 비교적 많았던 우리나라에서 석탑이 독창적인 불교미술로 자리 잡는 과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로였을지도 모른다.


석탑은 우리 고유 양식이므로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웠고 탑을 세우는 일은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관계없이 사찰 건립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양식 외적인요소가 개입될 소지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발생된 석탑은 통일신라에서 삼층 석탑의 형식으로 탑의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저자가 불국사 석가탑을 모델로 한 삼층석탑의 도식화한 구조를 보면, 대략 그 구분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석탑의 구조를 보면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뉘어 있다. 기단부는 아랫기단과 윗기단으로 나누어지고 아래에는 하대갑석, 위에는 상대갑석이 있다. 그 사이는 모서리 기둥과 사이기동이 있고, 면석이 자리한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로 나뉘고, 지붕돌에는 낙수면, 추녀, 층급받침이 위치하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양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보주, 찰주 등으로 세부 명칭을 나눌 수 있다.


석탑 양식의 도입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의성 탑리 오층석탑,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이 있다. 저자는 진홍섭의 《한국의 석조미술》을 인용하며 의성 탑리 오층석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목탑과 전탑의 두 가지 양식을 모두 갖추고 있는 점에서 한국 석탑의 또 하나의 시원 양식


이런 판단의 근거에는 외형상으로는 부여 정림사 오층석탑을 닮았고, 디테일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이 장에서는 삼층석탑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아마도 이 시기의 석탑 양식이 삼층석탑으로 그 전형을 갖춰가고 있는 시점이라 그랬던 측면이 있고, 실제로 상당 부분 삼층석탑 양식이 유물로서 많이 발견되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장에서는 시대별로 유물을 정리하고 구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느낌이 강하다. 석탑의 개별적인 유물사적인 가치를 찾기보다 당대에 만들어진 유물이 대략 어떤 것이 있는지 가볍게 넘겨도 좋을 듯하다. 개략적으로 저자가 기술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삼층석탑의 초기 양식은 7세기 후반과 8세기 전반에 조성되었다. 경주 감은사 삼층석탑, 경주 고선사 삼층석탑, 경주 황복사 삼층석탑이 그런 석탑이다. 삼층석탑 전형의 탄생은 8세기 후에 이루어졌다. 여기에 해당되는 석탑에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 김천 갈항사 삼층석탑이 있다. 다층석탑과 이형석탑의 등장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나타난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 경주 석굴암 삼층석탑,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이 그런 예이다. 매너리즘 양식의 등장은 9세기 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일어난 일이다. 경주 남산 용장사 삼층석탑, 산청 단속사 삼층석탑,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 등이 있다. 장식 취미의 등장은 9세기 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경주 원원사 삼층석탑, 양양 진전사 삼층석탑, 남원 백장암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 삼층석탑이 그렇다. 안동 지방의 전탑 전통은 8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걸쳐 볼 수 있다. 안동 법흥사 칠층전탑,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이 그런 예이기도 하다.


이 장에서는 해당되는 사진도판과 설명을 보면서 직접적으로 유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합리적일 듯할 정도로 수록된 석탑 사진을 볼 수 있다. 이런 접근은 백번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한 번 직접 유물을 보는 것이 나을 정도로 현장성의 중요성을 인식케 한다. 전편에서 선사, 삼국, 발해 시대의 유물을 다룬 한국미술사에서는 비교적 세밀한 도판과 사료가 부족해서 유물의 발생적 의미를 유추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2>에서는 전작보다 압도적인 사료를 토대로 직접적인 유물 평가의 가치를 톺아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세밀한 접근 방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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