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완벽한 정의이다

운명의 지배

by 정작가


제임스 앨런이 운명을 ‘완벽한 정의’로 규정한 것은 흔들림 없는 운명의 속성이 그 자체의 원인과 결과를 내포하고 있는 인간에게서 의미를 돌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개인을 따라다니는 운명은 그들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무자비한 귀신이며, 인위적인 노력이나 기도로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운명적인 숙명론에 익숙해지는 것은 삶 자체가 가르쳐주는 울림이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함을 자주 느끼기 때문이다. 운명론에 익숙해지면 소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 같지만 제임스 앨런의 운명론을 접하게 되면 그 또한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렸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자연적인 원리로 귀속되고 인간의 의지로 얼마든지 미래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선한 사람이 적을 사랑하고, 모든 증오와 원한, 불평을 초월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모든 것을 통해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작용하는 완벽한 법칙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의 최근 행보는 이런 제임스 앨런의 가르침이 결코 허상이 아님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인생을 내면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관점에서 접근하니 그동안 세상의 일들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와 분노 등이 일거에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또한 실수하거나 잘못한 사람을 관용으로 대하고, 유한한 인생의 과정에서 스치는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다 보니 제법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작은 티끌처럼 쪼그라드는 경험을 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형태로 반드시 나타난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생각해서도 행동해서도 안 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도 이런 운명적 행보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제임스 앨런이 ‘운명의 작용’이란 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은 변화하는, 발전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 인간을 판단할 때 자기만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타인을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여태껏 자기가 알고 있던 일면에 불과한 것인데도, 그것을 마치 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처럼 착각해서 판단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의 말처럼 변화하는 인간의 속성을 인지한다면 ‘종종 선한 자가 실패하고 사악한 자가 번영하는 경우’가 결코 신의 섭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제임스 앨런은 운명을 좌우하는 성격은 ‘습관의 복합체’라고 정의한다.


아주 많이 반복된 행동은 결국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행위가 된다.


필자는 어느 순간 지식보다는 의식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오히려 의식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지식수준과 의식 수준이 비례관계가 아님을 알게 했던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타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공존의 가치가 결국 자기 자신도 구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그런 믿음의 기반하에서 공적인 가치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몰두하는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지식의 최고봉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지, 공익을 위해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본다면 이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자신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의식의 향상에 있다면 이를 실천하는 것은 매일의 사유 습관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매일 검증된 작가들의 글을 통해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의식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달콤한 열매와 쓰디쓴 열매’라는 장에서는 인간 삶의 과정을 근본적으로 도식화한 표현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빚어낸 달콤한 열매와 쓴 열매를 먹으면서,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는 과정을 영원히 계속할 것이다.


이런 제임스 앨런의 말을 토대로 지난 시간을 복기해 보면, 운명의 여신이 한치도 어김없이 그런 상황의 주관자가 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지금 이런 마음의 화평을 얻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적어도 십수 년의 시간을 꾸준히 경험과 독서, 일기 등을 통해 스스로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었던 이유 때문이다. 해서 이제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마지막 소제목에 있다.


인생은 성격 발달의 도장(道場)


제임스 앨런은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공동체인 국가 또한 그런 운명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지도자들이 올바른 사람일 때 번영하며, 올바른 지도자들이 사라질 때 국가도 몰락한다


이런 사실은 지난 역사적 궤적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고로 개인과 공동체 또한 운명의 습속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위대한 사람만이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나도 살고, 공동체도 산다는 사실을 안다면 근시안적인 이익에 연연하여 운명의 누를 끼치는 선택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생이야말로 성격과 품성의 발달을 위한 위대한 도장이다. 모든 악덕과 덕, 성공과 실패는 투쟁과 노력을 통해 지혜의 교훈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배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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