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인간상에서 호족의 초상으로
저자가 언급한 통일신라 불상의 새로운 경향을 보면, 미소가 사라지고 근엄한 표정이 자리한다. 이는 불상이 추구하던 종교적 색채인 자비의 도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영역으로 그 범위가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이상적으로 바라보던 부처를 인간의 신체를 재연하듯 사실적을 표현했던 것은 그만큼 현실적인 측면에서 불상을 대했던 당대인들의 합리적 인식과정이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듯 통일 불상의 새로운 경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래상과 보살상, 대좌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경향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당시 사회적 배경을 토대로 해석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중대신라 불상의 사회적 배경을 기술한 이 장은 그에 관련된 사회적 배경을 세 가지 요인으로 분석한다.
첫째, 삼국 전쟁에서 승리한 통일신라인들의 자신감을 들 수 있다.
둘째,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경제, 문화적 생산력이 커져 이에 맞춘 성장력이 그렇다.
셋째, 불교 신앙의 형태가 다양해졌고, 당나라의 발달된 정치와 문화를 받아들인 측면이다.
여기서 첫째, 셋째 요인은 다소 모순된 상황을 목도할 수 있다. 당나라를 몰아냈던 통일신라인들의 자신감이 과연 당나라의 정치와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할리는 만무할 테고, 당시 교역은 불가피했던 점도 없지는 않기에 비판적인 견지에서 당의 문화를 수용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문화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견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대신라 초기 지방 불상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군위 삼존석불,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봉화 복지리 마애여래좌상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물에 젖은 옷주름’이란 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볼 수 있는 불상의 얇은 옷주름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용어는 서양미술사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이런 기법은 비단 서양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고, 송나라의 《도화견문지》에서 오대당풍(吳帶當風)이라는 용어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출수(出水)의 의문(衣紋)’이라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조각 기법을 저자가 한 면을 통해 할애한 것은 이런 기법의 불상이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7세기 후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판삼존불좌상을 보면, 좌정을 한 불상의 모습 외에도 양옆의 협시보살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런 보살상의 표현이 인도 굽타나 당나라 불상에서 나타난 것이 통일신라 불상에도 나타난 것을 보면, 문화의 전이 속도를 가늠케 하는 실례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배경에 후광처럼 전신을 감싸고 있는 연꽃 문양의 도안은 연꽃대좌와 묘한 조화를 이뤄 새로운 방식의 조형미를 직관할 수 있게끔 한다.
8세기 전반의 불상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경주 황복사 삼층석탑 출토 순금불상, 감산사의 두 석불, 경주 굴불사 사면석불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경주 황복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순금여래입상과 순금아미타여래좌상은 순금을 소재로 한 조형적 예술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진 도판에서 앞모습과 옆모습, 뒷모습을 볼 수 있어 그 실체에 한결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감산사의 두 석불인 석조아미타여래입상과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석판이 주는 무게감과 질감, 석조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중후함과 돋을새김으로 미세하게 표현된 기교가 돋보인다. 특히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복잡한 장신구가 가득한 의상을 가감 없이 세밀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굴불사 사면석불은 다소 미완성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석에 조각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사면이 모두 다른 양식이어서 시대를 달리했다는 설도 있고, 한 조각가가 아닌 여러 조각가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석굴암은 불상 중에서 최고봉으로 꼽힐 만큼 그 예술성과 인지도 면에서 타의추종의 불허하는 역사적 유물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저자 또한 석굴암 본존불과 석굴암의 보살, 천, 십대제사상 등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사진 도판도 큼직하니 본존불은 아예 한 면을 다 할애하고 있고, 참고 자료로 석굴암 불상 배치도와 요네다 미요지의 본존불 측량도 또한 반면 정도 할애하여 그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석굴암을 일제가 발굴할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식민통치시절이라 체계적인 발굴이라기보다는 해체와 보수 중심의 조사를 했고, 이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그 구조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보수를 하는 바람에 유물로서 그 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을 간직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도 유물 관련 사료로 일본인의 자료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경덕왕의 만불산 이야기는 《삼국유사》 전하는 이야기를 소개한 장이다. 중국의 공수반(公輸般)이라는 전설적인 조각가 이야기에 빗대 만불산 조각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인데, 마치 대국에도 이런 전설이 있는데, 우리 또한 그에 견줄만한 이야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불국사의 두 금동여래좌상은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금동비로자나불좌상 있다. 높이는 둘 다 2m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형상을 보면, 마치 현대에 제작한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고 예술적인 조각 솜씨를 볼 수 있어 당대의 예술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략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서산 보원사터 출토 철조여래좌상은 철불이 주는 다소 휑하고 둔탁한 느낌이 있지만 그 무게감이 있어 금동좌상에서 느낄 수 없는 거친 인상을 준다.
중대신라의 금동불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약사여래입상, 보스턴미술관 소장 금동약사여래입상, 리움미술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 부산시립박물관(김지태 기증) 소장 금동보살입상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된 입상들은 30cm 안팎의 입상들이라 앞서 소개한 금동좌상과 철조좌상과 비교해 보면, 그 예술미가 확연하게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래전 유물이라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부분 색조와 형태가 훼손된 측면도 있긴 하지만 그 크기와 활용 측면에서 차원이 다른 영향으로 인해 그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유추해 볼 따름이다.
경주 남산의 불상으로는 삼릉계 마애선각삼존상, 칠불암 마애불상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열암곡 석불입상 등을 소개하고 있다.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불상을 새기거나 돋을새김 한 불상을 말한다. 여기서 경주 용장사 방형대좌 석불좌상은 마치 석탑을 쌓아 올린 듯 독특한 반원 모양의 돌을 번갈아 올리고 맨 윗부분에 석불좌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마애불은 그 특성상 자연 암벽을 기초로 불상을 조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경주 삼릉계 마애선각삼존상은 마치 낙서를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경주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마치 조각품을 옮겨다 놓은 듯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똑같은 마애불이라도 국보가 되는 유물이 있고,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유물이 있다. 경주 열암곡 석불입상은 상반신 부분이 바로 바위에 닿아 있어 자연 변화 등으로 인해 바위가 이동이 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조각된 부분을 보면 도저히 그런 상황에서는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국 명산의 석불 ‧ 마애불이라는 장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기서는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을 위주로 소개한다.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은 마애불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예술성을 담고 있고,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그 크기가 4m나 되고, 둥근 관을 쓰고 있어 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이 상의 특징은 뒤편의 바위를 자연스럽게 광배로 삼을 수 있어서 마치 의도한 것처럼 연출한 느낌을 주면서도 주변 경관과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점이다.
하대신라 불상의 매너리즘 경향을 지적한 저자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대신라의 매너리즘 경향을 보이는 금동불은 의외로 많이 남아 있으나 한결같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의 절대자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하나의 우상으로서 불상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의력이 사라지고 관성적이고 편의적인 조형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매너리즘은 의도적으로 신체의 불균형미를 만들어 과장되고 왜곡된 제스처를 취하고자 하는 예술사조를 말한다. 여기서는 이와 관련된 유물인 경주 백률사 금동여래입상, 합천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안압지 출토 금동여래입상, 매너리즘 경향의 불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대신라 선종 사찰의 철불로는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상세히 소개한다. 이 두 유물은 각각 국보 117호, 국보 63호로 지정될 만큼 그 예술성과 보존적인 측면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보면, 그 형태미와 철조 작품에서 오는 무게감이 형용할 수 없는 안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신비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