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신라의 승탑

팔각당 사리탑의 새로운 전통

by 정작가


저자는 승탑(僧塔)이라는 새로운 불교 미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부도(浮屠)가 부처(Buddha)를 한자로 표기한 보통명사의 영향으로 낯선 양식을 부도라고 부르는 바람에 용어상 혼란이 일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탑의 본질과 승탑의 유래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도의선사로 인한 선종의 도입은 그가 기존의 불교가 가지고 있었던 습속을 깨고자 하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전 해석이나 일삼고 인습적으로 염불을 외우는 것보다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은 이런 맥락이다.


구산선문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형성된 9개의 주요 선 수행 계통을 가리킨다. 이 장에서 언급한 구산선문에 대한 해설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보림사 이후 각지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유학승과 고승들이 지방호족의 지원을 받아 절을 지었다. 이렇게 형성된 선종 사찰의 대표적인 산문을 후대에 ‘구산선문’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는 이런 구산선문의 성립과 퇴락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한반도 지도를 기준으로 표기된 구산선문을 보면, 당시 통일신라에 전역에 걸쳐 분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제시된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의 구조를 보면, 승탑 세부 명칭이 상세히 드러난다.


선종이 승탑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고승의 입적을 석가모니의 열반에 준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깨우친 자가 곧 부처’라는 선종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고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견주어 고승의 사리를 모신 승탑의 위치를 거의 동일 선상에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의식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의선사의 탑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하대신라의 승탑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팔각당 사리탑의 조형 또한 원에 가까운 형태로 깨달음을 상징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의식의 흐름을 조형물에 투과하는 방식은 이처럼 막연하게 느껴지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구체화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선조들의 의식적인 노력은 일제강점기 도굴과 약탈이 성행할 때 승탑과 탑비가 많이 파손된 것과 비례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승탑이 물신 풍조로 인해 그 상징적인 의미를 잃고, 물질적인 가치로 폄하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을 다루는 대상에 의해 얼마든지 그 가치가 훼손될 수 있음을 증명해 준다. 문화재나 유물의 가치는 그것 자체의 미학적인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성된 시대 정신과 가치, 의식적인 반향 속에서 자리하고 있음을 깨우치지 못하는 한 비록 승탑이라고 할지라도 한낱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양양 진전사 도의선사탑과 대비된 탑은 염거화상탑이다. 도의선사탑이 하대신라 승탑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여기서는 새로운 양식이 탄생된 초기 양식의 조형 논리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염거화상은 도의선사의 제자로서 염거화상탑은 도의선사탑 이후의 양식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탑의 뚜렷한 변화는 ‘이중기단이 상중하 구조의 3단 구조의 기단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조형미의 관점에서 이중기단은 하단부가 밋밋한 반면, 3단 구조에서는 장구 몸체를 반으로 잘라놓은 것처럼 연꽃무늬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도의선사탑의 탑신에 비해 다소 복잡하고 상단부도 민자에서 조형 요소를 가미한 인물 부조가 부각한 측면에서 보면, 예술적인 가치로서도 발전적인 모습임을 직감할 수 있다.


구산선문의 제1가람으로서 가지산 보림사가 현재에도 의미 있는 사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하대신라 선종 사찰 중에서 불상, 탑, 석등, 승탑, 탑비가 모두 당대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보림사’ 뿐이기 때문이다. 사진 도판을 보면,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 보조선사탑비를 볼 수 있다. 남원 실상사 증각 대사탑과 증각 대사탑비는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지만 비신이 훼손되어 그 장중한 멋을 느낄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구조와 조형성 측면에서는 유사성이 드러난다.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은 하대신라의 승탑 중에서 단연 그 안정미가 돋보이는 유물이다. 탑신의 구조 중에서 지붕돌과 추녀가 부각된 측면이 있고,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형태가 중후한 안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여주 고달사 승탑과 구례 연곡사 승탑을 보면, 그 조형미에서 자웅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예술적인 감각에 허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고달사 승탑은 약간 안정미는 떨어지지만 그 독특한 탑신의 배치에서 오는 장중함과 개성미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연곡사 동승탑은 안정된 구조의 탑신으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중후함이 느껴지는 유물이다. 동승탑비 또한 하대석의 화려한 조형미는 비석으로 이어지는 빼곡한 조각작품을 통해 더욱 그 가치를 드높여준다. 다만 비석 부분이 훼손되어 온전한 모습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일 것이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과 탑비 또한 당대 불교 미술의 최고봉임을 실감 나게 한다. 다만 철감선사탑은 상륜부가 없어졌고, 철감선사탑비는 비신(碑身)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국보 57호로 지정될 정도로 그 예술적인 조형미가 뛰어나지만 철감선사탑비는 그 예술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사실은 도판을 통해서도 직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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