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보이>를 창간하다

휴 헤프너

by 정작가


<플레이보이>의 창간자인 휴 헤프너는 잡지사 기자였지만 자기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편집장에게 월급 인상을 요구했지만 그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 헤프너가 새로운 잡지사를 창간할 당시 그의 자금력은 빈약했지만 그는 오히려 비용을 아끼기보다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를테면, 당시 유행하던 메릴린 먼로의 사진을 높은 비용으로 구매해 잡지의 표지 사진으로 싣기도 했다. 그런 전략은 점차 헤밍웨이나 존 스타인벡, 알베르트 모라비아 등 명망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싣는 것으로 인해 더욱 잡지는 격조 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아갈 수 있었다.


잡지사의 신화가 되어 버린 휴 헤프너의 <플레이보이> 성공 전략은 대중에게 품격 있는 잡지로서 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만일 휴 헤프너가 유명 작가들에게 거액의 원고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작가들 또한 <플레이보이>지에 작품을 기고하지 않았을 테고, <플레이보이>는 대중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일화를 보면, 휴 헤프너의 과감한 도전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일단 자신의 가치를 알아채고, 잡지사 편집장에게 월급 인상을 요구한 것만 봐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직장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샐러리맨에게 이런 용기는 결코 흔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고, 그런 요구를 들어줄 만큼 회사 또한 그리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도전적 행보는 단순히 회사를 퇴사한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잡지사를 창업하고 가장 인기 있는 직원에게 높은 성과급을 주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유명 작가들에게 거액의 원고료를 주고 작품을 확보하는 전략을 통해 기존 잡지에서 누릴 수 없는 혜택을 대중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잡지의 품격을 높이고 <플레이보이>를 잡지의 대명사처럼 여길 수 있도록 브랜딩 하는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급적 현실에 안주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사회 여건 속에서 뭔가 도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긴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을 보면,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도전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결국에는 성공을 쟁취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휴 헤프너 또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일과 위치에 도전함으로써 단순히 봉급쟁이로서 머물 수도 있었던 인생을 과감히 탈피하여 유명한 회사의 CEO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우스운 이야기를 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