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적인 지방 양식의 확산
저자는 고려의 석조미술 중 석탑에 대한 내용을 개괄적으로 기술한다. 통일신라와 고려가 비슷한 넓이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수도를 경주에서 국토의 중앙으로 옮기는 데 실패한 이유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찰이 축소되고 그나마 증축과 수리를 거듭하며 고려의 석조예술로서 자리 잡은 석탑, 석등, 승탑, 비석과 같은 문화재에 대해 언급한다.
본격적으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조 문화재인 석탑에 대해 소개하면서는 대체로 다섯 가지 양상을 띤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개성 지역의 다층석탑, 전국 각지의 다층석탑, 백제 지역의 복고풍 석탑, 고구려 지역의 팔각다층 석탑, 다양한 형태의 이형탑에 해당되는 부분이 바로 그렇다.
개성 지역의 다층석탑에서 다루고 있는 석탑은 개성 불일사 오층석탑, 개성 남계원 칠층석탑, 개성 영통사 오층석탑, 개성 현화사 칠층석탑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국 각지의 다층석탑에서 거론되고 있는 석탑은 하남 동사 오층석탑, 예천 개심사 오층석탑, 칠곡 정도사 오층석탑,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의성 빙산사 오층석탑, 제주 불탑사 오층석탑이 있다. 백제지역의 복고풍 석탑으로 다루고 있는 탑은 서산 보원사 오층석탑,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강진 월남사 삼층석탑이 있다. 고구려 지역의 팔각다층석탑은 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거론된다. 다양한 형태의 이형탑은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동 석탑, 제천 사자빈신사 사사자구층석탑, 김제 금산사 청석탑, 보협인석탑, 개성 경천사 십층대리석탑이 있다.
여기에 소개된 수많은 석탑 중에서 실제 본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개성 경천사 십층대리석탑>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석탑은 개풍군 경천사에 있던 탑이었는데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 경복궁에 세워 놓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탑을 보면, 실내에 세워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위용의 웅장함과 세밀한 표현 감각이 현대 감각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해서 감탄했던 적이 있다.
석등이라는 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각 석등, 강원도의 육각 석등, 장식적인 석등이다. 사각 석등에서는 논산 관촉사 석등, 개성 현화사 석등이 소개되고 있고, 강원도의 육각 석등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화천 계성리 석등, 금강산 정양산 석등이다. 장식적인 석등에서는 군산 발산리 석등, 나주 서문 앞 석등, 여주 고달사 쌍사자 석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석등은 앞서 다루었던 다층석탑에 비해 양식적인 측면에서 대채롭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는 석탑이라는 구조물이라는 고착성에 비해 석등은 비교적 자유로운 양식 표현이 가능한 작은 구조물이라는 유연성이 작용한 결과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승탑 또한 구조적인 차원에서는 그 양식이 비슷하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표현 양식의 기법으로 보면, 개성적인 양식을 가진 석조 예술품으로서 독자성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명등의 등장에서는 양주 회암사 지공 선사탑 앞 석등,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 충주 청룡사 보각 국사탑 앞 사자석등,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을 들 수 있다. 장명등은 사찰에 설치한 석등을 광명등(光明燈)이라는 불리는 것과 대별되어 능묘 앞의 석등이란 의미에서 장명등(長明燈)이라 불렀다고 한다.
승탑에는 개산조 탑을 모방한 중창조 탑, 팔각당 사리탑 형식의 계승, 새로운 승탑 양식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새로운 승탑 양식의 구현이라는 장에서 다루고 있는 승탑은 석등형으로 경주 불국사 광학탑, 사리호형으로 충주 정토사 홍법국사탑, 불탑형으로 원주 영전사 보제존자탑, 보여형으로 원부 법천사 지광국사탑을 든다.
석종형 승탑의 등장이라는 장에서 다루고 있는 승탑은 개성 화장사 지공선사탑,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이 있다. 비석 조각으로는 다양한 유물이 언급된다. 저자는 우리나라 비석이 거북받침돌과 용머리지붕돌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양식을 받아들인 신라 태종무열왕비 이후부터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 비석 조각의 변천은 고려시대로 들어오면서 변형과 과장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을 관찰해 보면 그 시작은 당나라 양식을 기초로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고유한 방식과 표현으로 토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간으로는 청주 용두사 철당간, 나주 동문 밖 석당간, 담양 객사리 석당간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당간은 절 입구나 절 마당에 세워져 사찰이 있음을 알려주거나 행사 때 활용하는 사찰의 주요 설치물로써 기능한다고 정의한다. 개인적으로 당간은 청주 상당구 남문로에 위치한 청주 용두사 철당간을 본 것이 전부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보긴 했지만 정작 그 용도를 몰라 궁금했었는데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시리즈를 통해 개략적으로나마 그 용도와 가치를 톺아볼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장은 고려의 석조 미술 중에서도 석탑, 석등, 승탑, 비석 조각, 당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각 유물 소개에 앞서 개략적인 사항을 기술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게 지면을 할애한 것도 처음 유물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각 유물에 대한 설명과 특징을 기술하다 보니 포괄적인 관점에서 유물사적인 의미를 돌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물들을 정리하여 다루다 보니 각개전투식으로 유물의 특성을 언급하는 방법 외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과거의 유물과 문화재를 정리하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시리즈를 접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유물과 유적 중에서 고작 손꼽을 정도로 그 유물을 직관하고 가치를 논할 수 있었던 경험이 일천함을 깨닫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애초에 이 시리즈를 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지만 유물과 문화재와 같은 역사적 맥락으로 그 시선을 확장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시리즈가 주었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