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적합성을 추구한 건축
저자는 이 장에서 고려 역사에 대해 개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로 지방호족의 문화, 고려의 대외정책, 중앙 귀족의 문화, 불교문화, 대몽항쟁기의 문화, 권문세족의 문화, 공민왕과 고려 멸망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고려 역사를 전체적으로 훑어가다 보면, 고려의 특징적인 유물이 생성된 배경과 그 의미를 개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고려 역사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보면, ‘통일신라나 조선왕조처럼 뚜렷한 문화적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또한 그 이유를 고려 왕조에서 일어났던 전란과 사회적 혼란상을 지나치게 부각한 것에서 찾는다. 특히 문화적으로는 불교의 영향권에서 탄생한 《고려대장경》과 금속활자, 고려청자와 금속공예, 고려 불화와 사경 등이 한국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처음으로 접근한 유물은 건축 분야다. 인용한 글을 보면, 개성의 도성과 궁궐에 대한 묘사를 통해 당시의 건축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다만 고려사의 특징 중 전란과 소실을 반복했던 이유 등으로 일관성 있는 건축 유물의 변천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시리즈를 보면, 유물을 개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고, 개별적인 관점에서 세세하게 살펴볼 때도 있다. 이는 기준점이 없다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볼 때 수많은 전란과 전쟁, 침입 등으로 체계적으로 유물을 미술사학적인 관점에서 분류하기 어렵다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접근 방식으로 접근하는 유물을 보면, 저자가 어떤 식으로라도 최대한 정보를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지식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관아와 저택이라는 장을 보면, 《고려도경》에 기록된 개성 시가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며 고려 저택은 현재 전하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연구할 대상이 없음을 짐작케 한다. 고려 관아의 건물로는 강릉의 임영관(臨瀛館) 삼문 만이 남아있다고 기술한다. 이런 상황을 유추할 때, 저자가 아무리 연구를 통해 유물과 유적을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이런 열악한 조건 하에서 고려사 유물과 유적에 대해 미학적으로나마 확신을 갖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사찰 건축의 가람배치는 유물적인 비교로서는 그 가치를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적으로 남아있는 유물과 유적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고려도경》과 같은 문헌을 통해 이를 살펴보는 이유는 그 속에서 실질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고려시대의 최고령 목조건물로는 원 간섭기 이전에 세워진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꼽는다. 이 목조건물에 대한 설명 중에서 특이한 건축기법은 ‘배흘림기둥’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배흘림기둥은 이런 착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운데 윗부분을 불룩하게 부풀려 곡선미를 드러내면서 마치 기둥에 탄력이 있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이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원나라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주심포집과 다포집이라는 양식이다. 비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설명만으로는 정확히 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저자가 설명한 대로, 다포집은 주심포집에 비해 화려하고 권위적이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 반면, 주심포집은 절제미와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볼 때, 개략적으로 그런 양식이 주는 이미지를 유추할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현존하는 목조건물’이라는 장에서는 주심포 건축물로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거조사 영산전을 들고 있다. 다포집 건축물로는 성불사 응진전, 심원사 보광전을 꼽는다. 사진 도판을 보면, 대략적으로 건축 양식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저자에 따르면, 고려시대 왕릉은 대부분 개성과 개풍군, 판문군에 모여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고려시대 수도과 개성이 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려 왕릉의 특징을 보면, 대개 돌방무덤이고 봉분 아래쪽에 십이지상을 둘렀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 장에서 언급한 왕릉은 태조 현릉과 공민 왕릉이다. 태조 현릉은 외적의 침입으로 몇 차례 이장되고 도굴과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던 기록을 소개하며, 재건 과정과 발굴 과정에서 나온 유물에 대해 짧게 언급하기도 한다. 공민 왕릉은 태조 현릉보다는 비교적 세세하게 그 위치와 무덤의 외양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물론 도굴과 수리와 관련된 일화도 포함된다.
고려시대 일반 무덤은 돌방무덤, 널무덤, 화장묘, 벽화무덤 등 그 양식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사진 도판을 보면, 사신도가 그려진 석관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하는 것만 석관의 수가 약 200점에 이른다고 하니 그 시대의 유물을 보고자 한다면 이곳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고려시대 부장품으로는 청동수저, 청동거울, 도기 또는 청자가 발견된다고 한다. 고려청자의 세계를 세상에 다시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부장품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그 의미를 새롭게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