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글씨와 그림

명필의 탄생과 사경의 전통

by 정작가


저자는 통일신라시대를 서예사에서 ‘고전적 글씨체의 확립과 확산’이 이루어진 시기로 평가하고 있다. 이 시기의 서예는 당과의 교류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통일 뒤로는 ‘학술, 문화, 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중국의 것을 많이 벤치마킹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로 사절의 왕래가 빈번했고, 귀족 자제와 승려들의 도당 유학이 많아졌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사대주의 문화에 익숙했던 역사적 편찬사를 감안할 때 비판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재조명할 필요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당나라 서예에 대한 수준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고찰 없이 무조건 당시 당의 문화를 숭상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당태종 시기에 저자도 기술한 바와 같이 우세남, 구양순, 저수량 등과 같은 유명한 서예가가 배출된 사실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비문과 범종, 불상에 새겨진 명문에 통일신라의 글씨가 남아있는 것은 그 시기에 이미 자체적으로 서예 수준이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 시기에 ‘비문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의 이름을 새기는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중대 신라에서 대체로 왕희지체가 주축을 이루다가 하대 신라로 오면서 구양순체가 유행’하게 된다는 사실은 이 시기의 특징적인 이슈로 평가할 만한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런 당나라 문화의 전래 차원에서만 접근하지 않고, 독자적인 견지에서 서체를 개발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서체 연구에 접근하는 것도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도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이런 관점은 과거 일제 침략기에 고문서를 훼손하고 은닉시켰던 가능성에 비추어 얼마든지 사대주의 사상을 추종하게끔 만들 수 있었던 왜곡된 과거 역사를 헤집기 위한 측면에서도 적극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집자비(集字碑)는 ‘전해 내려오는 서예가의 글씨를 응용하여 새긴 비(碑)’로 정의된다. 무장사아미타불 조상사적비는 최초의 집자비로 알려져 있다. 사진 도판을 보면,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탁본을 볼 수 있다. 탁본 상태는 다소 선명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봐도 그 서예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흥복사비의 잔편, 지리산 단속사의 신행선사탑비, 감산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에 새겨진 명문은 왕희지체를 추종한 유물로 당시 왕희지체가 얼마나 통일신라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통일신라의 명필은 김생과 요극일을 꼽는다고 한다. 김생의 글씨는 현재 전하는 것이 없으나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에 그 기록이 전하고 있다. 김생의 글씨는 신품(神品)에 비유될 정도로 그 천재성이 드러나고 있으며, 오죽하면 충주에서는 김생사(金生寺)라는 절이 생길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에 버금가는 명필인 요극일 또한 서거정의 《필원 잡기》에서 저자가 인용한 글을 보면, 대략적으로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동방의 필법은 김생이 제일이고 요극일과 승려인 탄연, 영업이 그다음이다.


하대 신라의 탑비의 근원을 찾다 보면 최치원이라는 인물과 마주하게 된다.


최치원은 시문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글씨도 한 시기를 대표한 명필이었다.


하대 신라의 탑비는 대부분이 구양순체로 쓰였으며, 이런 유행은 고려 전기까지 이어진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글씨는 해서, 행서, 전서에서도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통일신라 시대의 절정을 이루는 글씨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다라니경>을 통해 그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사리엄장구 속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경>은 ‘다라니라는 범문으로 주문을 외우면 신비한 힘을 얻게 된다’고 알려진 속설과 관계된 유물이다.


<신라장적>은 통일신라 시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라장적>은 당시 생활사를 연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은 ‘현존하는 통일신라의 유일한 서예 작품이자 유일한 사경(寫經)’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유물 자체가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상태는 아니지만 남아있는 부분이 많이 있어 사경 의식과 제작 과정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로서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의 화가들에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솔거, 정화, 홍계, 김충의를 들 수 있는데, 특히 솔거는 《삼국사기》의 열전에 기록된 대로 전설적인 화가로서 그 위치를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정화, 홍계, 김충의 또한 옛 문헌에 일부 기록으로만 그 이름이 남아있어 자세한 행적을 추정할 수 없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로서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통일신라의 글씨와 그림’이라는 장에서는 풍부한 기록으로서 그 가치를 규명할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집요한 추적과 연구 성과에 힘입어 명필의 탄생 과정과 성과, 그 의의를 비롯하여 사경(寫經)의 전통을 통해 선조들의 글씨가 어떤 식으로 변천했는지 그 과정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 시리즈를 보면, 역사적으로 그 명맥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조차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작은 흔적이라도 보존하여 이를 기록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저자의 노력이 있었기에 아주 오래전 조상들의 유물을 통해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고, 연구의 토대를 쌓아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돌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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