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과 변형의 다양한 변주
이 장에서 저자는 고려시대의 불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려시대 불상은 통일신라 시대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나타내기 때문에 편년사적 고찰이 거의 무의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세적 이미지의 절대자상으로서 언급한 불상은 저자도 가장 고려적인 불상이라고 표현할 만큼 대표적인 형태를 띤다. 이들 형태는 소조상, 마애불, 철조상, 석조상 등 재질이나 표현 방식면에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것이 현세적 이미지를 추종한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다소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지는 불상을 현세적인 모습과 동일시한다는 관점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없애고 자연스럽게 불상을 통해 불심(佛心)을 전파하기 위한 전략적인 차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형태의 고려의 불상은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곳에서 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파편화되어 있는 수많은 종류의 불상을 엮기 위해 일종의 자구책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수많은 불상들의 공통점을 돌출하기 힘든 점을 감안한다면 가장 보편적인 구분 영역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는 무난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불상이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 철제불두, 논산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 태평 2년명 마애약사여래좌상, 관음사 석조관음보살좌상, 용봉상 마애여래입상,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북한산 승가사 마애여래좌상, 금강산 묘길상 마애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월악산 미륵리 미륵보살입상
여기에 언급된 불상들의 대부분은 직접 대면하기 힘들었던 것이어서 그 표현 방식의 독특함과 개성적인 양식에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다. 작품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그중에서도 석조로 만든 불상은 그 화려하고 정교하며 세밀한 표현미가 유독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방 양식 불상의 등장에서 언급되는 불상은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논산 관촉사 석조관음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관음보살입상, 강릉 한송사 석조보살좌상,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 삼층석탑 앞 석조보살좌상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논산 관촉사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다소 기형적이고 특이한 형태의 불상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이 불상은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보다는 마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표현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 형태가 기이해서 한 번 보면 그 형태를 잊지 않을 정도로 개성적인 것이 특징적이다.
밀교 및 무속신앙과 결합한 불상으로는 철조천수관음상, 안동 제비원 석불입상, 화순 운주사 석조여래군상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철조천수관음상은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불상으로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길만큼 관념적인 형상을 직조한 것이어서 더욱 특이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후기의 불상으로는 윤왕좌 금동보살좌상, 순금제부살좌상, 전 장안사 출토 금동관음보살좌상과 금동세지보살좌상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불상들은 모두 금동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 화려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미적 감각이 접목된 작품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이런 수준의 불상을 직조할 수 있을 정도로 미학적인 감각이 배어있다는 것이 놀라운 따름이다.
후기의 선비풍 불상으로는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상투머리 금동보살좌상, 금동관음 세자보살입상,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강산 출토 소형 금동불상군이 있다. 이들은 미적인 감각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을 보면, 마치 현대적인 감각으로 직조해 놓은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완벽한 균형과 절제미, 화려함이 조화를 이룬 명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예술작품임을 실감케 한다.
초상 조각에는 태조 왕건 청동좌상, 희랑대사 목조좌상이 언급된다. 태조 왕건 청동좌상은 대충 보면 왕관을 쓴 알몸 형태의 상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불상으로 추정한 적도 있었으나 나중에 태조 왕건상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알몸 형태로 조각을 한 것으로 보아 의복을 입힌 상태로 상이 존재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희랑대사 목좌상은 상 자체에 의복을 표현해 놓은 유물이라 오랜 세월 동안 채색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그 보존 상태가 뛰어난 작품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