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지배
제임스 앨런은 집중력을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지만 ‘모든 목적의 성취에 이바지하는 유용한 능력’으로 정의한다. 그럼에도 집중력에 관련된 수많은 책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이는 집중력이 무언가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이지 그 자체로서는 커다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수련법에 의지한다면 도리어 정신적인 자제력, 수행 능력이 오히려 줄게 될 것이며 자신의 일에서 성공하기에도 부적합한 사람이 되어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으로 제임스 앨런은 ‘동요하고 방황하는 규율 없는 정신’에 대해 말한다. 또한 집중력을 얻으려면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와 반대급부적으로 집중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능력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처럼 완전히 숙달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고 기술하기도 한다. 이는 집중력을 체질화하는 것에 왕도나 지름길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반복의 힘만으로 이를 제어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일의 기본 원리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곧잘 중요한 일은 따로 정하고, 정작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소홀히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제임스 앨런은 ‘당신이 매일 하는 일에 정신을 기울이고, 해야 할 일에 당신의 지성과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집중시키는 것이 집중력 시작’이라고 설파한다. 이런 집중력에는 네 단계가 있다.
주의, 숙고, 몰두, 고요 속의 활동
제임스 앨런은 주의 단계에서는 ‘산만한 생각을 멈추고, 집중의 대상인 현재의 당면 과제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일종의 환기 과정은 의식이나 생각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복잡다단한 두뇌 회로를 잠시 멈춰두게 하고, 현실을 자각함으로써 실질적인 문제에 해결에 접근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숙고의 과정은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외부 자극에 대해 일종의 철벽을 치는 과정으로 ‘깊은 생각에 이렇게 집중해 있는 정신은 최소의 마찰로 최대의 일을 이루는 상태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에 예속되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강한 멘털이 체화될 때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듯 주의와 숙고의 단계에는 도달하지만 ‘몰두’나 ‘고요 속의 활동’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말한다.
완벽한 몰두에 도달한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정신을 집중하는 특정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나타낸다.
이런 ‘몰두형 인간’의 탄생은 발명가, 예술가, 시인, 과학자,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이 가능한 이유를 제임스 앨런은 ‘완벽한 질서, 예리한 통찰력, 폭넓은 이해력’에서 찾는다. 고로 일반인들이 단순한 노력으로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인간 유형은 그 자체로서 범접할 수 없는 비범한 역량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소위 ‘현명한 행위자’로 정의되는 네 번째 단계인 ‘고요 속의 활동’에 해당하는 사람의 속성을 보면, 그가 바로 국가나 사회의 지도자나 스승으로 자리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신중함, 판단력, 진지함뿐만 아니라 결단력, 열의, 조심성도 집중의 습관으로 더 깊어진다.
이런 다수의 특별한 역량들은 집중의 습관과 결부되어 더욱 큰 효과를 거두게 된다. 고로 세상을 이끌거나 지배하는 정도의 역량을 가진 인물들은 세상 속에서 발휘되는 유능함과 성공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토대로 ‘명상’이라는 더 높은 형태의 집중력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제임스 앨런이 ‘명상 가운데서 정신이 거룩한 경지에 눈을 뜨며 영적인 지식을 획득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만큼 정신의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는 원동력임을 실감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