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신과 삶을 스스로 형성하는 법

운명의 지배

by 정작가


제임스 앨런은 이 장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연계와 인간사의 모든 것은 체계적인 건축 과정을 통해 생겨난다


이어 암석, 식물과 동물, 사람, 집, 세상, 도시, 역사 등을 거론하며 구성과 해체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이런 과정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신과 삶을 스스로 형성하는 법’을 향해 나아간다.


성격은 생각이라는 벽돌로 건축된다


이런 문장은 곧바로 사람들의 성격이 가지각색인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성격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된 다양한 생각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임스 앨런의 결론이다. 성격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집을 짓는 과정이나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 비유하고 있는 저자는 각 개인의 특성이 그들 각자의 고정된 사고방식이며 성격의 완전한 일부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이런 특성이 생기는 것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신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격을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특성을 만드는 이런 생각의 지층에 불순한 생각이 스며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이라는 건물에 이런 생각은 부실한 벽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앨런이 부실한 벽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정신을 쇠약하게 하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염려

기운을 빼앗는 비도덕적인 쾌락에 대한 생각

결단력을 없애는 실패에 대한 생각

자기 연민과 자화자찬에 관한 병든 생각


이런 벽돌로는 ‘정신의 신전’을 세울 수가 없다고 말하는 제임스 앨런은 이와 대비되는 순수한 생각으로 다음과 같은 항목들은 내세운다. 이런 항목들은 소위 ‘유용한 벽돌’로 규정된다.


확신

의무에 대한 씩씩한 생각

자유롭고 넓고 구속받지 않은 이타적인 삶에 대한 가슴 설레는 생각


쉽게 말해서 생각의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의 대비는 다소 비대칭적으로 느껴지지만 개인적으로 확실한 것은 부실한 벽돌에 해당되는 생각이 사실상 한때 인생 자체를 관통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중 아직도 일부는 여전히 고쳐지지 못한 채 그런 생각의 반경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용한 벽돌’에 대해서는 아직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제임스 앨런은 이 장에서 ‘성공적인 삶을 위한 네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이 몇 가지 단순한 도덕적인 원리 위에 삶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초라한 기틀 위에 지은 건물은 결코 거센 풍파와 같은 시련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제임스 앨런이 주창하는 네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정의, 공정, 성실, 친절


마치 도덕과 윤리 교과서를 베껴놓은 듯한 이 항목은 대개들 알고 있는 인간의 기본 관념일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관점에서는 개념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제임스 앨런은 이런 이상적 관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는다. 그저 이런 도덕 원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이루는 경우는 절대로 불가능하고, 이 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이 불행하고 실패한다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성공의 방정식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 가치에 있다고 봐도 잘못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제임스 앨런이 제시하는 ‘완전한 삶’은 이런 정의, 공정, 성실, 친절이라는 도덕 원리를 ‘인생의 규범과 기초’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 ‘인격을 도야’하고, ‘생각과 말과 행위가 도덕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며 ‘모든 의무와 모든 일 처리를 도덕 원리의 요구에 정확히 순응하여 수행’한다면 ‘평화와 행복 속에 쉴 수 있는 인격의 신전을 건축’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제임스 앨런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구성물이나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관념, 우주나 미생물의 구조와 움직임까지도 철저히 수학적 원리에 기초한 토대로 인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확신의 근거에는 자연적인 원리에 기초한 자연 생성의 법칙이 인간의 생각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현자의 지혜가 자리하고 있었던 이유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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