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수양

운명의 지배

by 정작가

이 장에서 제임스 앨런은 ‘확고한 목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라고 하는 ‘의지력’에서 확고한 목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모든 성공적인 노력의 기초’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확고한 목표가 없는 인간은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으며, 자기 내부에서 찾아야 할 삶의 토대를 다른 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지의 수양을 저자는 신비나 비결과 같은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오로지 그 길은 ‘개인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정신과 삶’ 속에 가까이 있고, ‘자기 성격의 약점들을 공격하고 극복’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런 의지의 수양을 위해서 저자가 제시하는 일곱 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다.


나쁜 습관을 버려라.

좋은 습관을 형성하라.

지금 이 순간의 의무에 성실하게 주의를 기울여라.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든 열의를 가지고 즉시 행하라.

규칙에 따라 살아라.

신중하게 말하라.

정신을 제어하라.


이어지는 내용은 위 규칙들을 실천하기 위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열거하며, 그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한다. 나쁜 습관을 극복하고 좋은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목표와 목표의 방향을 지혜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임스 앨런의 주장은 그것이 결코 단순한 의지로써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정이 아님을 역설(力說)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바로 현재 당면한 과제에 성실을 다해 임해라고 권고한다. 매 순간 주어지는 의무에 성실하게 대처하다 보면, 네 번째 규칙인 어떤 일이든 열의를 가지고 즉시 행할 수 있게 된다.


꾸물거리고 주저하는 것은 과단성 있는 행동을 하는 데 있어 전적으로 걸림돌이 된다.


당장은 사소한 일이지만 그런 작은 일을 미루는 행동은 그 파급 효과가 삶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제임스 앨런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규칙에 따라 살라고 하는 것은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인간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경계하라는 경고일 수도 있다. 다음 문구는 그런 사항을 직접적으로 일깨워준다.


욕망과 기분에 따라먹고 마시고 육욕에 빠져, 되는 대로 무분별하게 생활하는 것은 의지와 이성을 지닌 인간의 삶이라 볼 수 없다. 그런 생활은 동물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을 동물의 삶과 다를 바 없다고 질책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 동물적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규칙으로 ‘신중하게 말하라’는 항목은 내용적인 면에서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덕목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한 말에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 결국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인, 자기 정신 제어에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임스 앨런은 이 장에서 자제력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질타하면서 자제력을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정신을 제어한다는 것은 자제력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런 자제력을 통해 자기 정신을 제어하는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신적인 제어까지 ‘자신의 모든 일과 행동 방식에 적용’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임스 앨런은 말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면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의지라는 왕관’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이 의지라는 왕관의 최고봉은 결국 인격으로 귀결된다.


작은 일도 철저히 하라


의지의 수양 과정에서 이 문구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실천 사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곧잘 큰 일에만 집중하고 작은 일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럴 경우 ‘불완전하게 일을 수행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제임스 앨런은 경고한다.


인생사와 세상사의 모든 중요한 일들을 사소하고 작은 일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자 또한 한때 이불 개기, 방 정리나 청소, 설거지, 쓰레기 분리수거 등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하지만 사소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들에 소홀했던 적이 많다. 인간관계나 동호회, 자격증 공부 등에는 시간을 아낌없이 할애하면서 정작 생활환경이 난장판인 채 살았던 경우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먹었던 일들이 제대로 진척될 리 없었다. 결국 마음을 다시 먹고, 주변 환경을 깨끗이 정리하고 나서야 일이 일사천리로 풀렸던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제임스 앨런 또한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정작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들부터 처리하라고 하는 것은 작은 일들이 모여 인생을 이루는 거대한 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제임스 앨런은 또 ‘우수함은 항상 요구된다’는 장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철저하게 일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쾌락에 갈망’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의무를 수행하는 데 쾌락에 대한 갈망은 양립할 수 없는 요구 조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일에 심혈을 기울여라’는 장에서는 자기 맡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 일을 수행하라고 가르친다.


세속적인 의무를 철저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자는 종교적인 의무도 철저하게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세속적인 일조차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명상이나 영적 수련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임스 앨런은 이런 사람들은 그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속적인 쾌락과 종교적인 행복 둘 다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가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쾌락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하고 종교 생활도 망칠 것이다.


필자 또한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실제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세속적인 생활과 종교 생활을 넘나들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임스 앨런이 지적한 것처럼 세속적인 욕망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신앙생활에 충실을 기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수십 년의 생을 이어 왔던 것이다. 차라리 둘 중 하나를 포기했더라면, 그에 상응하는 바람대로 인생의 행로가 명확했을 텐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모두 놓친 꼴이 되었다. 이제는 세속적인 쾌락에서 벗어나 종교적 신앙에 귀의하여 구원의 삶 속에 머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속적 욕망은 끝이 없고,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바닷물을 들이켜는 것처럼 갈수록 갈증이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앨런이 말미에 오죽하면, ‘뜨뜻미지근한 종교인이 되느니 차라리 진지한 속물이 되는 편이 낫다’고 강조하는 것도 어떤 방향으로든 철저함을 지향할 때, 비로소 세속적인 목표라고 할지라도 그 길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의지의 수양은 결국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그에 대한 철저한 실행의 과실로 이어지는 선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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