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지배
제임스 앨런이 주창하는 사상은 때론 현대 시대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이론으로 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것이 인간의 생각이나 운명, 본질을 꿰뚫는 혜안에서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장에서는 행위의 원인과 결과라는 주제로 그런 사상을 설파해 나간다.
먼지 알갱이에서 가장 큰 항성에 이르기까지, 물질계의 모든 부분들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질서 속에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과학자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규칙과 질서에 대한 제임스 앨런의 생각은 ‘우주적 조화와 균형’이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옳은 일을 하면 보상을 받으며, 옳지 못한 일을 하면 그에 맞먹는 응보를 받아야 한다.
이런 단적인 문구에서도 도덕인과율에 대한 그의 사상은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런 말은 다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냄새가 풍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정작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당연한 진리를 알고도 실천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세상은 혼돈의 상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제임스 앨런은 ‘인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릇된 이해’ 에서 산수 문제를 푸는 학생의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인생의 해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번 장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마치 예수그리스도가 성서에서 수많은 비유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리를 설파하는 것은, 현학적인 단어나 말투가 아니다. 진리와 진실은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옷을 만들고 있다’라는 장에서 제임스 앨런이 설파하고 있는 것은, 인생과 관련된 원인과 결과가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공표한다.
각자의 인생은 본인 자신이 창조하거나 망치는 것이지, 이웃이나 어떤 외부 환경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제임스 앨런의 인식은 때론 세상을 완전무결한 질서의 장으로 해석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다소 세월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원인과 결과는 쌍두마차처럼 동시에 진행되는 속성이 있음을 간파한 거장의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는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있는 제임스 앨런은 루소와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며 그런 인식이 인과의 법칙에 의한 자연적 원리임을 시사한다.
이와 같이 개인의 행위는 완전무결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 각자의 장점과 단점,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이런 모든 행위와 결과를 개인의 행위로 귀속시키는 제임스 앨런의 사상은 때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의도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세력들마저도 자연의 섭리로 환원시키는 한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한계조차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연의 질서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운명적 선험론을 주지 시키는 과정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이런 사상가들의 주장과 관점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때로는 자신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고 비판적인 견지에서 살펴보는 습관을 기르다 보면, 사유의 날을 벼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