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실천

운명의 지배

by 정작가


이 장에서 제임스 앨런의 명상은 열망과 집중력의 결합으로 정의된다. 여기에서 열망의 정의는 그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임스 앨런은 ‘어떤 이가 단지 명예와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세속적 삶 이상의 보다 차원 높고, 더 순수하고, 더 빛나는 삶에 도달하려는 욕망이 간절할 때 그는 열망을 갖기 시작한 것’이고 ‘그러한 삶을 찾는 데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집중시킬 때 그는 명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명상에 도달하는 길을 일러준다. 그러면서 집중력과 명상을 대비시키고, 집중력은 세속적인 성공에 명상은 정신적인 성공에 병치시킨다.


집중력의 완성은 힘이며, 명상의 완성은 지혜이다.


이 문장은 제임스 앨런이 정의하는 집중력과 명상의 본원적 위치를 명징하게 드러내 준다.


명상은 영적인 집중력이고, 생각을 정화하는 작용으로 규정하고 있는 제임스 앨런은 ‘신성한 깨달음을 얻고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인 명상의 가치를 인식하게 한다. 이런 명상의 원리는 ‘순수한 것을 거듭 반복하여 생각함으로써 마음을 정화’시키고 ‘실제 생활에서 그러한 순수를 구현함으로써 신성한 지식을 얻는다’고 설파한다. 또 명상과 공상의 차이를 밝힘으로써 공상과 명상을 착각하지 않도록 징후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명상하기 어려운 때’라는 소제목의 장에서는 시간, 장소, 상황을 명확히 밝히고 그에 대한 예시를 들어 범인(凡人)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목표의 힘’이라는 장에서 제임스 앨런은 ‘분산은 나약함이며 집중은 힘이다’라는 규정을 통해 집중의 가치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목표는 성취의 전당에서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한데 모이지 않으면 흩어져 쓸모없이 될 수도 있는 것을 하나의 완벽한 전체로 묶고 결합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공허한 변덕, 일시적인 공상, 막연한 욕구,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는 결심은 목표 속에 있을 여지가 없다. 성취하고자 하는 한결같은 결심 속에는, 온갖 하찮은 생각을 말끔히 없애고, 승리를 향해 똑바로 전진하는 무적의 힘이 있다.


마치 필자의 생각과 행동을 지적하는 것 같은 위의 문장은 개인적으로 보면, 그간의 도전과 노력에도 비록 세속적인 성공이라도 다다를 수 없었던 이유가 명징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모두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다. 목표 없이 성공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제임스 앨런은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확고한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역설(力說)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확고부동한 목표를 누가 저지할 수 있겠는가?


질문 자체가 소제목이 되어버린 이 장에서 제임스 앨런이 전해주는 가치는, 목표라도 그것이 방향을 달리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성취의 결과를 맺는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장애물은 오히려 자극제가 된다고 말하는 제임스 앨런은 실수, 손실, 고통조차 인간을 억누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런 확신의 배경에는 지성을 수반으로 하는 힘의 원천이 결국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임을 일깨워준다.

이전 21화집중력 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