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자궁경을 한 이후로 생리 주기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한 달 가까이 생리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생리를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독일 집에 다녀왔다. 시험관 하는 동안 부모님 댁과 시골집에서 지내다가 내 집에 돌아오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역시 집이 최고다. 남편이 있고 나의 물건들 그리고 고요함이 있는 우리 집. 집 근처 슈퍼에서 원하는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떠는 일상이 존재하는 이곳에 돌아오니 그간 시험관 시술로 인해 쌓인 피로와 긴장감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하루종일 잠을 자고, 어느 날은 아침부터 의욕이 가득 차서 조깅을 하고 돌아오고, 또 어떤 날은 맛있는 안주에 와인을 한잔 기울이며 재밌는 티브이를 보며 깔깔 웃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보낸 시간이 늘 핑크빛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뭔지... 아이가 없이 사는 삶에 대한 괴로움만 떠올라서 배겟잎이 다 젖도록 울기도 하고 어느 날은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싶기도 했다.
어느 일요일 교회에 가는 길에 고양이 무리를 마주했다. 엄마 고양이와 애기 고양이들이 봄날의 햇살을 즐기며 교회 마당에서 뒹구는 모습이었다. 그저 눈을 돌리다가 마주한 장면 중 하나였고 걷던 길을 걸어 교회에 앉아 예배를 보는데 갑자기 고양이 모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 고양이도 저렇게 자기 새끼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데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왜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보고 있는 것인가? 왜 나의 간절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 것인가? 내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분노에 가득한 눈물이 났다. 교회 사람들과 독일에 있는 사람들에겐 시험관 시술을 오픈하지 않았다. 긴 휴가로 한국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줄만 아는데 그런 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 괜한 소문과 억측에 휩쌓일 것 같았다. 주변의 눈도 있으니 얼른 눈물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록 눈물은 야속하게도 더 뜨거워져만 갔다. 남편에게 집에 가자고 눈빛을 보내고 교회를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난임 우울증에 빠진 것 같았다. 이 우울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의사의 상담도 아니요, 어느 제약회사의 좋은 약도 아니다. 그저 임신이라는 두 글자뿐이다.
자궁경 후 40여 일이 지나고 생리가 시작했다. 드디어 소중하게 만들어 놓은 PGT-A통과 배아를 이식하는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설렌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이번 냉동 이식은 배란을 억제하고 내막만을 키워 이식하는 인공주기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하루 3번 프로기노바 약을 먹고 일주일 뒤 다시 내원해서 자궁내막을 체크하기로 했다.
일주일 뒤 - 매일 햇빛 아래서 만보씩 걷고 다시 찾은 병원 내막은 6.5mm였다. 이식을 하려면 8-9mm 정도의 자궁 내막이 좋다고 하는데 아직 조금 모자란 수치다. 내막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는 에스트라디올데포 주사를 한대 더 맞고 하루에 3알 먹던 프로기노바를 5알로 바꾸고 3일 뒤에 다시 병원에 오기로 했다.
3일 뒤 - 주사도 맞고 약도 증량했으니 오늘은 이식 날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초음파실에 누워서 내막의 두께를 확인하는데... 믿을 수가 없다. 3일 동안 자궁내막이 단 0.1mm도 자라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이식 중에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는 자궁 내막까지 말썽이라니!! 직전의 자궁경이 무리였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담당 선생님은 오늘 에스트라디올 데포 주사를 한대 더 맞고 프로기노바는 5대로 유지 그리고 추가로 비아그라 팔팔정을 질정으로 사용해 보자고 했다. 만보 걷기도 열심히 했고,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잘 지내왔는데 이젠 약발도 듣지 않는다니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다.
삼일 후.. 다시 찾은 병원... 과연 내막은 자랐을 것인가.. 초음파 실의 모니터 화면에 자궁내막이 잡히고 센티를 재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시작점에 클릭을 하고 끝점에 마우스를 클릭할 때까지 내 심장은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8.5 mm 됐다 됐어!!! 온몸의 긴장이 다 풀려버렸다. 이제부터 5일 뒤에 이식이다. 이식 때까지 프로기노바 5알, 팔팔정, 유지, 프롤루텍스 주사 2대, 소론도 2알, 아스피린 저녁에 1알! 먹어야 할 약이 엄청나다. 각 약에 맞춰서 알람을 세팅했다. 여기에 영양제까지 추가하니 약만 먹다가 하루가 다 같았다. 제발 이번 이식은 약도 많이 먹으며 준비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