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겨우겨우 쓸 수 있는 모든 약을 써서 내막이 잘 자란 것을 확인하고 5일간 프롤루텍스를 맞은 후 이식을 하러 갔다. PGT 통과 배아가 세 개였고 그중에 두 개를 이식하기로 했다. 쌍둥이가 될 확률이 높으나 지난 차수에 PGT통과 배아 한 개를 이식하고 착상조차 되지 않았던 경험으로 인해서 이번에는 고민 없이 두 개를 이식하기로 했다. 이번에 두 개를 이식한다고 해도 하나가 남으니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으리라.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기다림과 과정 끝에 이식실에 들어갔다.
"라즈베리님 어서 오세요!"
익숙한 담당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식 잘 부탁드려요!"
"네 그럼요~ 우리 PGT 통과 배아가 세 개 있었잖아요! 저기 벽에 모니터 보시면 오늘 이식할 배아 2개가 띄어져 있어요. 감자배아로 상태 아주 좋고요. 해동과정에서 상태 안 좋은 배아 한 개는 폐기됐어요. 그래서 남은 배아는 없고 이식 진행할게요"
뭐? 남은 배아가 없다고?? 그렇게 소중하게 검사까지 다 한 배아가 해동 때 상태가 나쁘다고 폐기했다고? 한 개가 얼마나 소중한데! 상태가 얼마나 나빴길래 폐기를 하지? 이식하는 내내 화가 났다. 병원은 세워진 기준과 프로토콜에 맞춰서 해동과 폐기를 결정했겠지만 얼마나 소중하게 얻은 배아인데!!! 이번에 잘 안되면 또다시 채취를 해야 한다고? 참 절망스럽고 화가 났다.
"이식 잘 되셨고 9일 뒤에 진료실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가 누운 침대는 몇 개의 코너를 돌아서 다시 이식 대기실로 들어왔다.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고 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번 이식에서 제발 저에게 새 생명을 내려주세요. 이제 남은 배아도 없고 더 이상 채취를 할 힘도 없어요. 도와주세요.'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링거액을 바라보며 이번이 제발 마지막 이식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조심스레 집에 돌아와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상생활을 지속했다. 날마다 햇볕을 쐬기 위해 가벼운 산책을 했고 최대한 기분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5일 뒤 아침
나는 또다시 임테기를 들었다.
한 줄이다.
6일째 아침에도 임테기를 했다.
아주 선명한 한 줄이다.
임테기를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바로 버렸다.
7일째 아침 또 한 줄이다.
한 줄임에도 기계적으로 프롤루텍스 주사를 맞는다.
8일째 아침 역시 한 줄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9일째 아침 희망 없는 한 줄 임테기를 보고
푸롤로 텍스 약을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피검사를 한 후에 교수님을 만났다.
"테스트해보셨어요?"
"네한 줄이에요" 눈물조차 나지 않고 나는 왜 착상이 되지 않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계속 한 줄이었어요?" 교수님조차 믿을 수가 없었는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신다.
"네 왜 안 됐을까요."
"그러게요.. 보자... 자궁경도 하고 상급 PGT 통과배아 두 개를 이식했는데 왜 안 됐을까."
그건 내가 묻고픈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런 경우에는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약 끊고 생리 시작하면 다음 채취 시작해 봐요."
교수님도 딱히 새로운 방법을 없어 보인다. 연신 내 차트를 클릭 클릭하며 왜 안 됐을까를 읊조리던 젊은 의사 선생님... 나는 거기서 모든 것을 놓쳐버렸다. 희망도 슬픔도 절망도 분노도 어떠한 감정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진료실을 나와서 주사를 환불하고 원무과로 가서 바로 전원서류를 뗐다. 이제 이 병원의 익숙한 시스템과 공간이 주는 편안함조차 진절머리가 났다. 다시는 이 공간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 시작이 필요한 순간이다. 여태까지 씩씩하게 버텨왔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다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런 것인가보다.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이렇게 간절하게 아기를 원하는데 왜 내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시는걸까? 이미 내 인생에서 바닥을 찍고 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 그 보다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어둡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그곳. 오늘은 참 슬프고 힘든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