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100개 외우기
어제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짐을 했던 터라 독일어 공부가 하루 종일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었다. 노트북을 딱 접고 시작하고 싶었지만 거실 정리도 하고 싶고 책상도 치우고 싶고 커피도 마시고 싶고 왜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쉴 거 다 쉬어놓고도 감 하나 먹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감을 깎아서 책상 위에 앉았는데 이게 웬걸.. 떫은 감마저 설탕을 뿌려 놓은 것처럼 맛있다. 사각사각 감 깎는 소리도 음악처럼 들린다. 주황색을 바라보며 의미 없는 상념에 잠긴 채 멍하니 천천히 감을 음미해본다.
"이제는 진짜 해야겠지?"
책을 폈다. 지난가을에 사다 놓고 챕터 원의 반도 못 끝낸 채 다시 덮어 놓은 책이었다. 그래도 몇 단어 기억이 나긴 한다. der Höhepunkte... der... 데어 회에풍크테 고점 높은 점 데어 회에풍크테.. 여러 번 읊조려본다. 앉아서 한 개 두 개 외우다 보니 어느새 10개를 외웠다. 한 페이지 외우고 뿌듯해서 핸드폰을 30분을 봤다. 그리고 그다음 페이지 10개를 외웠다. 방금 전 외운 10개 중에 9개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진도를 쭉쭉 빼보기로 한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정보를 집어넣는 게 여간 쉽지 않다. 평생 써온 한국어 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거 뭐였지? 그거 있잖아!" 같이 대화를 하는 30대 중반의 상대도 그게 무엇인진 알지만 단어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넘겨! 나 뭔지 알아 들었어!" 하고 넘길 때가 많다. 한국어도 그 모양이니 새로 집어넣는 독일어는 더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게 자연의 섭리인 듯하다.
하지만 100세 시대라고 하니 나는 아직 인생의 중반부도 오지 않은 상태인데 벌써 포기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100개의 단어를 기어코 다 외었다. 총 1시간 반이 걸린 것 같다. 그중에 핸드폰 한 시간이 반 이상이었던 것 같지만 오늘의 나에게 칭찬을 해줘야겠다.
내일은 주말이고 오늘 저녁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는 약속이 잡혀있다. 과연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작심삼일은 꼭 넘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