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의 워킹맘, 학생맘... 나 잘 할 수 있을까?

마흔살의 대학생 1주차

by 라즈베리


“혹시 몰라서”라는 습관병

나는 파워 J다.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세워야 마음이 놓이고, 그 계획을 따라가야 비로소 안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파워 J’의 계획이 항상 내 능력치를 과대평가한다는 거다. 늘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은 산처럼 쌓이고, 계획표는 빼곡하다 못해 숨이 막히고, 끝내지 못한 리스트 앞에서 한숨 쉬고 짜증 내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한 해, 두 해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럴까? 왜 내가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왜 과감하게 계획 몇 개를 지우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걸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그 밑바탕에는 ‘겁 많음’이라는 성향이 도사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직할 땐 “혹시 몰라서” 다음 직장의 입사 전날까지 일을 하고 바로 다음날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했다. 공부할 땐 “혹시 몰라서” 성적이 다 나오기 전까지는 필기노트 하나도 못 버린다. 이 “혹시 몰라서”는 늘 나를 긴장시키고, 쉬지도 못하게 만든다. 마음의 짐은 많고, 어깨는 무겁고, 늘 바쁘고! 되돌아보면 그땐 좀 쉬었어도 되지 않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로 다시 되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이번 학기도 마찬가지다. 독일 대학을 자퇴(Exmatrikulation)하는 버튼 하나 누르지 못한 나. 그리고 아이의 대학 부설 어린이집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또다시 ‘혹시 몰라서’를 선택했다. 그 결과, 복직과 학업을 동시에 시작하는 학기가 되었다. 핸드폰의 구글 캘린더를 보면 이건 거의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수준이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오후 4시에 녹초가 되어 돌아오고, 집안일은 손도 못 대고, 저녁 먹고 나면 온 가족이 기절하듯 취침을 한다. 여유? 그런 단어는 내 삶에서 잠시 로그아웃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5월, 6월, 7월 이 4개월만 잘 버티면, 아이 어린이집 자리를 1년간 유지할 수 있다. 그거 하나 바라보고 오늘도 계획표를 붙잡고, “혹시 몰라서” 또 한 발짝 나아간다.



여름학기, 다시 시작

토요일에 한국에서 돌아왔다.
한 학기 열심히 공부한 후 한국에 가서 펑펑 놀았다. 너무 신나게 독일 생활을 잊을 만큼 재미있게 보냈다. 그만큼 긴 여운이 남았다. 그 여운을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나는 다시 일상이라는 트랙에 올라타야 했다. 일요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온몸이 느려졌고, 마음도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리고 월요일.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이번 학기는 매일 아침 8시 15분 수업이 있다. 지난 학기처럼 밤 7시에 시작하는 수업보다는 훨씬 낫지만, 1교시 수업에 맞추려면 집에서 7시 5분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럼 나는 새벽 5시 반쯤엔 일어나야 하고, 아이는 6시에는 깨어야 한다. 학교 부설 어린이집은 8시에 문을 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8시 반, 혹은 9시쯤에 오는 게 보통이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 아이만 유난히 이른 시간에 덩그러니 앉아있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그럴 때마다 묻게 된다. 이 생활은 누구를 위한 걸까. 아이를 위한 걸까, 나를 위한 걸까, 아니면… 누구도 아닌 그냥 타협의 결과일까. 아직 첫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머리가 아프다. 벌써부터 힘들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월요일 아침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아직 아이도 나도 독일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아침 준비를 여유 있게 마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첫 번째로 입장했다. 아이는 익숙한 공간에 다시 돌아왔지만 한국에서 나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때문인지 떨어지기 싫어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곧 다시 적응할 거라는 선생님의 응원에 빠르게 등을 돌려 나왔다. 이따가 일찍 데리러 가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야겠다. 오늘은 나도 여유 있게 강의실에 도착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작은 성공이 이렇게도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새로운 교수님, 낯선 강의실, 처음 듣는 수업들. 모든 게 아직은 어색하고 서먹하다. 지난 학기의 익숙함이 생각보다 많이 그리워졌다.
첫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 시간표를 다시 짰다. 우리 학교는 시간표가 배정되는데 학생수가 많아서 5가지의 시간표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왓츠앱 그룹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시험을 쉽게 낸다는 교수님 수업으로 바꾸고 공강일을 최대한 만들기 위해 시간표를 이리저리 옮겨봤다.

사실 내게는 ‘명강의’보다는 ‘잘 들리는 목소리’와 ‘읽을 수 있는 필기체’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유명한 교수님이라도, 웅얼거리는 목소리나 해독 불가능한 판서는 외국인 학생인 내게는 고난이다.
그런 기준을 따라 수정한 시간표는, 화요일을 공강으로 만들어주었고 비록 월요일과 금요일이 조금 힘들지만 그 사이에 숨 쉴 틈 하나는 생겨서 안심이 되었다.

이번 학기에 듣기로 한 수업은 C++, 알고리즘, 마이크로 컴퓨터 테크닉, 그리고 Diskrete Mathematik이다. 그중 ‘마이크로 컴퓨터 테크닉’은 80% 이상 출석해야 시험을 볼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회사 일 때문에 수업을 빠져야 할 날도 생길 텐데 제발, 그날들이 이 수업이 있는 월요일만 아니길 바라본다.

여름학기는 겨울학기보다 짧다. 총 14주지만, 그중엔 부활절도 끼어 있고 교수님 출장 주간도 있을 테니 실제 수업은 12주 정도가 될 것 같다. 지난 학기 16주+크리스마스 방학까지 버텨냈던 걸 생각하면 이번 학기는 훨씬 덜 버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별 수업이 없다!


오롯이 나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되는 구조다. 이 사실이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진심으로 환호성이 나왔다. 벌써 첫 주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제 13주 남았다.


잘할 수 있을까? 아침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내려놓을 때 항상 물어본다. 로빈아 잘할 수 있어~?

아이는 "아니!!"를 말하는 날도 있고 "응!"이라고 말하는 날이 있다.


우리 잘할 필요 없이 하루하루 눈앞에 있는 날들을 잘 보내보자.

이번 학기도 무사히, 건강하게, 나답게. 그러기를 바란다.


남은 13주도 파이팅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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