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부활절연휴로 인한 월요일, 그리고 공강으로 인한 화요일, 이렇게 딱 이틀 쉬었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큰 여파가 있을 줄은 몰랐다. 연휴를 맞이해 주말포함 금토일월 짧게 숨 돌렸던 건데, 오히려 그 사이에 몸과 마음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수요일이 되자마자 다시 학교로 나섰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연휴였고, 몸은 괜히 욱신거렸다.
수업듣는 학생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실습 분반때문에 고민하시던 교수님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부활절 연휴 지나면 진짜 공부하는 사람들만 남기 때문에 실습 분반을 늘릴 필요가 없이 그냥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게 그냥 으름장이 아니었구나. 지금 내 상태를 보면 너무 잘 알겠다. 막 시동 걸고 출발하려던 순간, 갑자기 브레이크를 세게 밟은 차처럼 멈춰버렸고… 이제 다시 출발하려니 엔진이 턱턱 걸린다.
원래는 아침 7시 6분 차를 타고 여유있게 집을 나섰는데, 이젠 겨우겨우 8시 6분 차. 아이의 수면 패턴이 연휴 후에 싹 바뀌었고, 그 여파는 내 등굣길까지 따라왔다.
그 결과 8시 15분에 있는 알고리즘 수업을 9시 쯤 도착해 반만 듣는 사태 발생했다. 칠판 3개를 꽉 채우는 교수님의 판서를 한참 놓친 채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칠판 사진을 찍고, 아이패드를 켜고, 급하게 필기를 따라가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 돼버렸다. 단 3주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진도는 아득히 저 멀리에 가있다. “매 수업 끝나고 복습하자!”는 다짐은… 사실, 지켜진 적이 없었다.
이제서야 시간표에 몸이 좀 적응되려나 싶은데, 왠지 이번 학기 전체가 청강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난 학기엔 딱 붙는 느낌이었는데 참 이상하다. 아마도, 수업 내용을 땅에 못 박듯 복습하지 않아서일 거다. 붙질 않으니 자꾸 붕 뜨는 거지싶다.
마이크로 컴퓨터 테크닉 수업은 교수님이 칩 설명을 해주시는데 도저히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하드웨어 속도가 어떻게 칩의 번호가 어떻고 말씀해주시는데 실물이 없으니 상상의 날개를 펴서 듣는데는 한계가 있고 솔직히 시험과 수업이 별로 연관이 없어서인지 실습시간에는 20명 가까이 오는데 진짜 수업에는 7명 남짓밖에 오지 않는다. 졸음과 싸우며 듣는 나른한 수업.. 무엇을 배웠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복습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산수학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계속 확률 파트인 것 같긴 한데 교수님이 녹화도 해주시고, 실습 수업을 맡으신 교수님 설명이 또 기가 막히게 좋다. 거기다 내친구 얍쌉이가 워낙 정보를 잘 정리해줘서, “그것만 죽어라 파면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안도감 있다. 나한테는 그게 큰 힘이다.
C++은 재작년에 선이수(Vorleistung) 통과해뒀기 때문에 시험만 보면 되긴 하지만...문제는 실력이 늘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Vorleistung 과제를 하지 않으니, 문제를 손으로 푸는 경험이 없고, 그러니 진짜 감이 안 온다. 교수님의 모든 강의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고, 연습문제 풀이도 있고, 한국어로 된 책도 준비됐고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왜이렇게 하기 싫고 시간이 잘 안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오늘 앉아서 내가 듣는 과목을 하나씩 정리해보니 비로소 전체 그림이 조금 보이는 느낌이다.
내가 뭘 배우고 있는지, 어디서 흐름이 끊겼는지, 그동안 왜 이리 멍하니 헤맨 건지도.
결국, 이 모든 붕뜬 느낌은 복습을 미루고 미뤄 내용이 머리에 ‘붙지 않아서’였다. 지난 학기는 시간표가 몸에 감기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학기는 늘 어딘가 어색하고 이방인 같다.
이제는 정말 정신 차릴 때다. 틈틈이 잡히는 약속들도 줄이고,ㅡ‘공부하는 삶’에 다시 시동 걸기.
이건 다짐이다.그리고, 출발이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다시 액셀을 밟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