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3월 말 서류상의 복직은 이미 시작됐고, 회사 방침에 따라 육아휴직 전 쓰지 못했던 휴가를 붙여 써야 해서 4월 한 달은 휴가로 채웠다. 그리고 5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출근 스케줄을 받았다. 아이를 낳고 2년 만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이 순간, 설렘보다 긴장과 떨림이 앞섰다. ‘내가 이걸 정말 다 해낼 수 있을까?’ 육아, 공부, 직장이라는 세 줄타기를 이 좁은 하루 24시간 안에 버무릴 수 있을까? 불안함과 걱정이 몰아칠 때마다 달력을 보며 자기 암시를 했다. 5월과 6월, 이 두 달만 잘 버티면 7월엔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니 두 달, 딱 두 달만 어떻게든 버텨보자. 하루하루 잘 버티다 쌓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 도착해 있겠지!!
요즘 내가 가장 공감하고 되뇌는 말이 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자.” 완벽을 쫓다 보면 시작도 못 하고 끝내는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냥, 부담 없이 시작해 보면 어설퍼도 끝은 볼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에게 필요한 건 완성이지, 완벽이 아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키타 (독일 어린이집) 에는 나처럼 육아와 공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엄마가 한 명 더 있다. 몰도바에서 온 알버트 엄마 빅토리아다. 알버트와 우리 아이는 생일도 일주일 차이밖에 안 나서 더더욱 공감대가 많아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 빅토리아는 작년 여름 방학에 5000유로를 들여 눈썹 반영구 시술을 배우고 집에 스튜디오를 차렸다고 했다. 그런데 사는 곳이 작은 마을이라 손님이 많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더니 겨울 방학에는 속눈썹 연장기술을 추가로 배웠다고 한다. 대단하다. 그리고 이번 학기엔 무려 6과목을 듣는 중이라고 했다.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지만 일단 들어보고 결정할 거야.”라는 말을 듣고, 와… 진짜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다. 알버트 엄마 덕분에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복직을 하자마자 회사 스케줄 때문에 금요일 수업을 통째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도 따라가기조차 벅찼는데 하루 통으로 빠져야 한다니 너무 속상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나의 메인은 ‘직장’인데!” 육아휴직 동안 오히려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더 크게 자리 잡아 있었던 걸까. ‘학교에 못 가서 아쉬워’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던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학교에 못 가는 게 당연한 거고, 갈 수 있는 날이 감사한 날이다.
이번 주 내내 학교를 마친 후에 회사에서 나온 7시간짜리 온라인 트레이닝을 짬짬이 들어야 했다. 7시간이라는 숫자만으로도 질려버릴 만큼 큰 부담이었지만, 막상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용어들, 스쳐 듣기만 해도 이해가 되는 내용들 덕분에 마음이 들떴다. “아, 그래. 내가 있던 곳이 여기였지!” 오랜만에 성취감과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들어도 들어도 이해하기까지 꽤나 시간을 요했던 대학교 수업에 빠져 있다가 이렇게 명쾌한 온라인 트레이닝을 들으니 마치 4k 영상을 보는 듯이 세상이 밝아 보였다. 그리고 복직 첫날, 오랜만에 찾은 회사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고, 반겨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인사에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다시 이 멋진 곳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찼다. 마치 처음 독일 땅을 밟았던 날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게 걱정으로 가득했던 복직은, 예상보다 훨씬 순조롭고 따뜻하게 시작되었다. 너무 먼 미래는 보지 말자. 잃을 것에 집중하지도 말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시간, 아이가 키타에 갈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온 이 자리 —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이룬다.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소중한 조각들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적당한 힘, 적당한 속도로 잘 굴러가게만 하면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모든 걸 완벽히 해내는 슈퍼우먼이 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삶을 무너지지 않게, 단단하게 살아내는 것.
복직 첫 주, 나 참 잘 해냈다.
그리고 다음 주도…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