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간 줄 모르고 오르던 환율이 당국의 구두개입에 가까운 경고에 주춤했으나 다시금 1450원을 넘어가며 기세를 매만졌고 며칠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발언에도 잠시 웅크렸을 뿐 우상향 기조는 꺾이지 않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환율은 수출에 있어 호조로 여겨졌다. 실제로 여러 국가가 비슷한 기술로 비슷한 재화를 만들어낼 때 통화가치는 곧 가격경쟁력이었고 일본의 버블경제나 한강의 기적의 밑바탕에도 고환율의 덕택이 있었다. 고환율은 동시에 수입에 있어 부담이 늘어난다는 해악도 존재한다. 산업화 시기에는 수출 호황이 수입 부담을 상회했기에, 수출 호황이 경제 성장을 견인해 개인의 구매력을 올렸기에 동전의 반대쪽 면은 그리 부각되지 않았다. 이제 적당한 기술과 적당한 노동력으로 만들어내는 재화들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시대가 도래하며 첨단 기술력이 가격에 묻어나는 재화들이 세계 수출입 시장에서 흑자와 적자를 가르는 물품이 되었다. 개도국을 벗어나면 경제성장은 더 이상 드라마틱하게 개선되지 못한다. 어느정도 수출해서는 경제의 역성장을 막아내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수입물가의 압박이 더 이상 웃어넘길 형편이 되지 못하면서 고환율은 마냥 호조라고 볼 수 없는 실정이 됐다.
작년 말 원달러 환율(이하 환율)에 대해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1500원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코로나부터 누적된 유동성 증가에 비상계엄, 현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가 더해진 상황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학개미가 달러 유출을 부른다는 한국은행의 입장도 수요와 공급 원리를 뒷받침한다.
다만 지금의 사태는 수요와 공급의 논리만으로는 설명이 부적절한 듯하다. 유동성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물가 상승률이 목표했던 2%대에 머물렀던 반면 환율은 6~7%대 상승했는데 시중에 풀린 돈만으로는 4%대의 간극을 설명하기 어렵다.
달러보유량과 연동하던 기존의 이해방식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점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며 달러의 가치가 하락했는데 원화가치는 더 빠르게 내려가며 꾸준히 환율을 올렸다. 최근 다시금 달러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환율 상승세가 가팔라진 것은 달러의 가치변동과는 별개로 원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내려갔다는 방증이다. IMF 위기 당시 외환보유량이 사태를 불러온 핵심 원인이라면 현재의 순유출 내지 보유량은 다만 원달러 환율에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일 뿐 전반적인 원화가치 절하에 갖다 댈만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명목과 실질실효환율이 80대를 기록한 것은 통화의 종류에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가치가 하락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수치다.
내로라하는 경제학자와 석학들이 제기하는 요인들이 오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복합적인 요인이 만들어낸 사태를 각자의 영역에서 단편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환율은 전 세계 시장에 존재하는 통화량에 반비례한다. 간단한 수요와 공급 원리다. 원화를 갖길 희망하는 투자자가 많다면 시장에 원화는 줄어들고 가치는 올라간다. 반대로 각국의 투자자가 원화로 보유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면 시장에 원화는 넘치고 가치는 하락한다. 환율은 곧 국가의 미래와 비전에 대한 인기가 투영된 결과다. 원화 가치절하는 한국의 미래와 비전에 대한 불신의 동어반복이다. 그것이 지금 사태의 근본적 이유다. 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에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일은 외화 수급 전반을 뒤흔드는 문제가 아니고 그들을 두들겨 팬다고 해서 환율이 안정화될 리 없다는 사실을 당국도 모를리 없다.
정부는 상법 개정과 서학개미의 국내 복귀를 해결책으로 점찍은 듯하다. 물건의 품질 개선 대신 갖은 혜택으로 일단 고객을 불러모으겠다는 식이다. 작년 수출을 주도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에는 D램 가격 상승과 더불어 고환율의 역할이 있었고 전체의 37%를 차지하는 두 기업이 코스피 호조를 견인했다. 고환율이 일군 시장으로 사람들을 모아 고환율을 잡겠다는 발상은 모순적이다.
주말 새 국내시장에도 개별 종목을 추종하는 ETF 상품과 레버리지 3배 상품을 출시하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이 아닌 꾸준한 우상향이 선택의 동기였다고 말한다. 이른바 한 방에 대한 심리는 국장 종토방에 더 잘 퍼져있다. 가뜩이나 높은 변동성에 불확실성을 더한다면 증권시장은 도박판이 된다. 돈 놓고 돈 먹는 판에 신뢰가 싹틀 리 만무하다. 외국의 자본은 우리네 월급통장처럼 증시를 잠시 스쳐갈 뿐 투자가 아닌 투기로는 시장의 체질을 바꿀 수 없다. 근본적인 대책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매력도와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의 제고와 여전히 높은 제조업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 개선이 그에 맞닿은 숙제다.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변수가 눈 앞에 떡하니 있다. 변죽만 울리는 미봉책 대신 본론을 건드려야 위기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