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그리고 분산

by 아직 간호사

서울공화국은 대한민국의 동어반복이다. 수도권 집중은 산업화 시기 잠재력을 터뜨릴 수 있었던 저력이면서 산업화 이후 돈과 터전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든 결과이기도 했다. 좁은 서울에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면서 국가 기능 대부분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그 기능들은 쉬이 수도권을 넘어 뻗지 못한다.

집중의 다음 단계는 분산일 것이다. 공기놀이에서, 단 수에 맞추어 바닥에 공깃돌을 흩뿌리는 일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2알씩 두 덩어리, 1알과 3알이 각기 붙은 구도를 맞춰내는것이 곧 실력이다. 한 단이 끝나면 주먹 안에는 공깃돌 다섯알이 가지런히 모여있다. 모으는 일이 어떤 과정 중에 별 수고로움 없이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에 가깝다면 분산은 특정한 의도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20년도 더 된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도 지역균형을 말했었는데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것을 보면 국가적 차원의 분산은 크나큰 도전임에 틀림 없다.


정부 출범마다 지역 발전은 익숙한 공약이 됐다. 당선 이전에 유세를 다니면서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한 약속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거나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번번이 좌초되곤 했다. 어렵사리 반대를 뚫고 실행한 지역 발전이 성공한 사례도 찾기 어렵다. 세종시는 정부청사 반경 1km 남짓을 제외하고는 적막하다 못해 음산하다. 공공기관을 이전에도 임직원의 기차표 구매와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만 늘었을 뿐 이전된 비수도권에 뿌리내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지역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번 정부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다. 광역단체를 통합한 초광역단체가 하나의 축이 되어 서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다면 생활과 기능상의 편리함 덕에 서울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옮겨갈거라는 구상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토 끝자락으로 직장을 옮겨버리던 방식과 달리 넛지에 가까운 이 구상은 분명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보이고 나름의 성과를 거둘것으로 기대된다. 인구 소멸을 우려하는 시대에 작은 덩어리가 규합해 활기를 더해보자는 시도는 국가 차원에서도 긍정적이고 인근 지역간 통합이라는 의미도 작지 않은 듯하다.


현재까지의 진척을 보면 구상한 의도대로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기본적으로 초광역단체를 위한 과정은 기계적 통합이 아닌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재건축에 가깝다. 영역은 물론 관리와 질서, 기능을 담당하는 관할까지 총체적인 변화가 동반되는 만큼 도내 여러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꽤 오랜 시간 합의를 해야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날 단체의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지역의 이름을 앞에 붙일 지에 대한 논의에만 몇 주가 소요됐고 행정 기능 분산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못한 상태가 이어졌다. 작게는 관공서의 이름 변경부터 각종 물품과 서류의 이름을 바꾸고 데이터를 수정하는 일만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지만 재정을 충당할 방안 마련도 없다시피해 사실상 중앙정부의 지원만 기다리는 꼴이다. 거기에 더해 인사 발령을 두고 도내 중심지역 교사들이 통합에 반대하는 일도 발생했는데 해당 권역 교육청은 교사들을 설득해나가겠다고 했다. 도 내 이동조차 달갑지 않을진대 수도권의 공공기관은 지역으로 내려가기 얼마나 싫겠나. 그러면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수도권의 공공기관을 이전시켜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건 내로남불에 가깝다.

수도권을 제외한 4개 극끼리 건강한 경쟁보다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우려스럽다. 적지않은 재원이 투입될 거대 계획인 만큼 경제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데 경제성만 따지자니 수도권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곳 위주로 비중을 높이게 되고, 비교적 낙후된 지역은 여전히 낙후된 채로 남아 통합의 이유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고 경제성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면 낙후된 지역에 알짜 기관들을 보내는, 현재의 묻지마식 이전이 반복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정책의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워지며 자체 재정으로 경제성 창출이 가능한 지역들은 역차별이라 반발할 것이다. 여전히 '지역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 정도의 막연한 인식만 가진 국민들에게 5극 3특의 당위성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듯하다. 그런 중앙정부가 4극 간 갈등을 봉합하면서 능숙하게 교통정리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지만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 칼에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급발진하듯 정책으로 좌지우지해서 될 일도 아니다. 5년제 임기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면 진즉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니 지역 분산은 정치 헤게모니를 넘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서서히 이뤄져야 할 과업으로 대함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왜 이 일이 필요한지 부터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상술한 이동의 문제처럼 이 일은 불편함을 반드시 동반한다. 국가를 걱정하는 지도자와 달리 국민 개개인은 당장 내 안위가 가장 우선에 있다. 지금의 편리함을 대가로 국민 개인이 누리게 될 이익과 청사진이 제시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 이는 특을 이루게 될 권역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현재 내 영향력이 크니 내 이름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고집은 유치하다 못해 한심하다. 전주와 나주가 합쳐 전라, 경주와 상주가 합쳐 경상이 되었지만 현재 네 도시는 특산물과 유적으로만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라와 경상으로 명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세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의미 없는 논쟁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서남권, 동남권 가릴 것 없이 인구는 줄고 있고 재정 자립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군집을 이뤄 더 큰 권역으로 거듭난다면 중앙정부에 아쉬운 소리 할 일이 줄고, 더 이상 면구하거나 눈치보지 않아도 되며, 커진 목소리로 능동적으로 정책을 발의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 통합이 가져올 이득은 취약지역에서 더 직접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 다음은 중앙정부의 몫이다. 왜 해당 기관이 특정 지역으로 이전해야 하며 이전시의 효용이 현재와 비교해 어떠한 지, 전부는 아니어도 설명이 되어야 한다.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해수부가 가고, 산림이 울창하니 산림청이 가야된다는 소리는 분산 자체에 대해 국민이 갸웃거리게 만들 뿐이다. 정답은 없더라도 정부가 고심끝에 적어낸 풀이가 공유되고 나름의 일리가 있을때 바퀴는 움직인다. 국민 모두의 협조가 필요한 일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갈 때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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