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전통시장

by 아직 간호사

최근 정부에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의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야부터 오전 10시까지 발목이 잡혔던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숨통 트일 방안이지만 2026년에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새벽배송, 심야영업의 제한은 격주 의무휴무와 함께 유통산업발전법에 기반한 규제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행된지 어느덧 13년이 지났다. 그 기간 전통시장이 명성을 떨친 영역은 대기업, 대형마트에 버금가는 품질과 시장으로서의 경쟁력이 아닌 외국인과 내국인을 가리지 않는 바가지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편협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일반인들은 전통시장과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고(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임팩트 있는 정보들이 지배적으로 기억에 남기에 몇몇 상인들의 일탈일지언정 부정적인 심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그 부정적 일화들을 상쇄할 만한 만족도 높은 시장 경험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뽑히는 글쓰기'라는 책이 있다. 저자가 유력 일간지 기자 출신인데 본인의 언론사 입사 과정중에 노력했던, 유효했던 글쓰기 관련 팁들을 책에 가득 담았고 한때 언론인의 꿈을 꾸며 몇 번이고 이 책을 읽었다. 실렸던 글 중에 기억나는 것은 저자가 시험에서 썼던 답안이었는데 그 논술의 주제 역시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한 찬반이었고 글의 골자는 주말 주차 공간 제공 등으로 자연스레 시장 유입 독려하는게 효과적이다 라는 것이었다. 책을 접했던 시기는 3~4년 전, 당시에도 이 책이 신간은 아니었다. 저자가 그 답안을 제출했던 시기는 그보다 더 전일 것이다. 언론사의 입사 논제가 당면한 사회 문제를 겨냥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한 회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유통망과 시스템을 통해 표준화된 상태를 보장하고 규모의 경제로 매대까지 올려두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마트에게 도매상 몇 단계를 거쳐 사실상 소매로 떼어다 파는 수준의 전통시장 상인들은 품질과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물류 시스템이 고도화되기 전 이른바 청과물 점포가 있던 시절에는 에누리, 덤 문화가 성패를 좌우했는데 1인 가족이 늘고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현재에 두 가지 전략은 큰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경쟁의 장은 기울다 못해 침몰하는 타이타닉처럼 수직을 이루고 있다. 여건으로만 따지자면 사실 경쟁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도 어렵다. 한층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일말의 향수나 동정심 외에 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가야할 당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 년 전 글에서처럼 물건보다는 주차 공간 등의 물품 외적인 요소가 차라리 방문을 유도하는데에 효과적이다.


그렇다고 일 평생 청과나 수산, 기타 물품의 소매업을 영위한 시장 상인들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매업체로 하여금 시장 점포를 운영하게 해 시장 상인들을 고용하는 방식이라든가 그간 소매업에 종사한 경력을 바탕으로 상인들의 재취업을 도모하는 방식이라면 좋았을지 모른다. 당시 정부가 택한 방식은 경쟁의 장을 반대로 기울여 강제로 경쟁이 성립하도록 유도하는 일이었다. 약자가 크게 하는 방식이 아닌, 강자가 약해지게끔 하는 방식은 언뜻 마트와 시장이 꽤 경합을 벌일 것 처럼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시장에서만 사용 가능한 재화도 만들어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절기마다, 명절마다 현금성 지원에 가깝게 뿌려진 온누리 상품권으로 장을 보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았다. 상대를 약하게 만들고 정부가 빵빵하게 뒤를 봐줬지만 경쟁력에 대한 제고는 없었다. 시장은 점포들이 군집을 이루어 형성된 상업지구다. 점포는, 그러니까 재화를 파는 업종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물건을 살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이유가 추가되는 일은 없었고 상품권을 소진하기 위한 구매, 체리피커 외에 추가적인 소비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주말마다 장보기의 선택권을 강제로 박탈당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라도 소비자를 전통시장으로 유인하고자 했으나 소비자는 금요일과 월요일에 장 보는 것으로 조치를 무력화했다. 동시에 마트의 지위는 갖지 않으면서 표준화된 품질을 제공하는 이커머스 시장이 끼어들었고 어사무사한 사각지대에서 이커머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트 규제로 마트와 시장 모두 울상이 됐고 새로이 출현한 이커머스가 수혜자가 됐다. 결과적으로 13년간의 규제는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번 논의는, 그 오류를 인정하는 시작점이라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법안이 목적을 위해 취해온 방식과 결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석과 성찰은 별개다. 이커머스의 발생이나 새벽배송의 대유행을 예측할 수 없었다 해도 사후약방문식일지언정 보완 입법이 이뤄질 시간은 충분했다. 이커머스가 덩치를 키우는 동안 규제는 오로지 대형 마트만을 향했고 역차별 논란에도 미동조차 없던 정부의 대응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비단 전통시장이나 유통업 문제뿐 아니라 AI 발 변화로 상황이 시시각각 변할 여러 분야에서도 이처럼 엉덩이가 무겁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규제가 계속 발굴될 수 있다. 모든 정책이 성공할 수 없지만 성공으로 이어지도록 보완하고 땜질하는 것은 당국의 의지이자 능력이다.

방식에 대한 통렬한 반성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너무 자주 쉽고 빠른 미봉책을 택하곤 한다. 약자의 보호라는 소명 하에 강자에게 가차 없는 방식도 문제다. 나아가 시장 스스로 강해질 '시간의 가치'를 외면하고 덥썩 고기부터 물어다 준 점은 여전히 단기간의 성과에 급급한 현실이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되 경쟁을 통해 도태될 수 있다는 여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준비없는 무조건적인 약자 감싸기가 약자와 강자 모두에게 손해인 자해적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일 역시 하나의 상생 방식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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