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말의 해, 새해 벽두부터 정치와 부패가 엮인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지강헌이 인질을 잡고 유전무죄와 무전유죄를 외치던게 88년도였다. 30년 가까운 시간에도 정치계의 뒷돈 문제는 지긋지긋하게도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새로이 부상한 갑질 문제는 장소와 형태를 가리지 않고 터져나온다. 발생이 반복되는 자체도 문제지만 어사무사하게 넘어가려는 사후 대처 역시 그대로라 퇴행이 개선될거라 섣불리 기대하기 어려운 판국이다.
핀트는 달랐지만 발단은 쿠팡 사태에서 시작됐다. 이용자 정보 유출과 더불어 근로자 사망 은폐 의혹에 여론이 불을 댕기던 즈음 쿠팡 임직원들이 정치인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당사자로 지목된 김병기는 '고가의 오찬이 아니었을 뿐더러 국회의원으로서 일상적인 만남'이었다며 일축했다. 당시에도 원내대표로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피감기업의 임원들과 별도의 자리를 갖는 일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후 해당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전직 보좌관이었던 쿠팡 직원들에 대한 인사 요구였다는 소식이 나왔다. 당사자들은 부인했지만 보좌관 출신의 쿠팡 임원이 채용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해외로 발령되거나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정 사실화됐고 인사 요구가 받아들여졌으니 쿠팡측도 원내대표인 김병기에 무언가를 요구했을 거라는 추론은 아주 엉뚱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용건이 있다면 기업과 무언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꼭 일주일 뒤 대한항공으로부터 숙박권을 지급받았다는 의혹도 터져나왔다. 김병기가 참여했던 국회 소위는 국토위와 정무위로 당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 및 마일리지 문제를 다뤘고 대한항공은 쿠팡과 마찬가지로 이해관계가 김병기와 직결된 기업이었다. 사실무근을 주장하던 초반과 달리 보좌관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나오고 며느리가 거론되자 비로소 김병기는 부적절한 처사였음을 시인했다. 시인은 했지만 사과와 근신 의사 대신 '반납하겠다'는 이야기로 갈음했다. 이후부터는 현재 수사중인 논란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갈래갈래 분지했고 공천과 돈 이야기까지 닿고야 말았다. 시의원은 자수서를 제출했고 김병기는 당의 윤리심판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한다.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한 번 해본 사람에게 두 번이, 세 번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켠에서는 이혜훈의 갑질과 막말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 사태 역시 끝을 모르고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의혹들이 시추되고 있다. 강선우는 별개의 두 사건에서 교집합을 담당하고 있다. 강선우는 이혜훈과 마찬가지로 장관급 인사에 지명되었다가 갑질 의혹(이 아닌 사실)으로 사퇴해 출범한 정부 첫 내각 낙마이자 현역 국회의원이 국무위원 후보자에서 낙마한 첫 사례가 된 바 있다. 보좌진에게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라고 했다든가 변기를 고치라고 했다는 지시들이 봤을때 느낀 불쾌감은 여전히 선명하다. 거짓에 거짓을 거듭했던 해명들이 대부분 드러나고 쫓기듯 사퇴했기에 그 반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국민의 대표는 커녕 그간 영위했던 여러 위치나 공적들 역시 위협받을 만큼의 검증들이 양치기 소년으로 판명난 그에게 뒤따를 정의로운 처사일거라 기대했지만 세간은 고요해졌다. 그 역시 쥐죽은듯 반년을 흘려보냈고 운이 나쁘게 3년 전 의혹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다시 목소리가 커질 기회를 얻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모호한 기준과 규정에도 직장 내 괴롭힘 조차 과태료가 부과되는 현실에서 국회 내 괴롭힘은 무사안일하다. 여러 매체에서는 의원이 직접 고용과 해고를 결정하고 타 의원실로의 이직이 활발한 보좌관의 특성 상 현재 소속된 의원의 입김이 이후에도 작용하는 구조 탓에 갑을관계가 고착화됐다고 분석한다. 의원이 고용에 대한 전권을 가지는 것에 부당함을 제기하는 일 대신 문제점의 작동 원리를 밝혀내는데 그치는 행태는 갑질을 불가항력으로 두고 무기력하게 방관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트로트는 처진다며 저런게 노래냐 힐난하던 아버지는 60대를 넘어서자 트롯 애호가가 되었고 풋술을 먹으며 여자 얘기나 히히덕거리던 나 역시 30대에 들어선 이후 돈과 주식, 회사, 정치 얘기나 하는 아저씨가 되었다.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그런 정서를 갖게끔 설계된 것처럼 특정한 시기가 되면 사람만 바뀔 뿐 대화의 주제와 공기는 반복되는데, 그 코딩의 주체는 아마도 우리가 부비고 사는 사회일 것이다. 내가 겪은 웃어른들은 차떼기를 욕했고 이인제를 욕했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했다. 술과 정치가 만났다 하면 고성과 욕설은 기본찬처럼 딸려왔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말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정치가 욕지거리 없이는 나눌 수 없는 주제이고 정치에 갖는 선입견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민은 표심으로 말한다고들 한다. 다스리기 위해 선거가 있는 것인지 선출되기 위해 다스리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뽑히는 일은 수단과 목적 사이 애매하게 위치하고 있기에 투표의 중대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표로 말하는 일은 몇 년에 한 번 가능하다. 시간의 간극에는 망각이라는 장애물도 도사리고 있다. 시험 시작 2분 전 우리는 까먹을세라 마지막으로 목격한 단어와 개념을 입으로 외기 시작한다. 중얼대다보면 두어개는 기억에 꼭 남기에 꽤나 쓸만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삶에서 하나의 시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우리가 발딛고 부딪히며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은 한낱 시험과 비교할 수 없을 영향력을 가진다. 나는 지금 정치와 갖은 부패들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립적인 오류이며 비행이고 구조의 문제다. 통제로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민주주의보다는 독재가 차라리 적절하다. 그러니 민주주의에서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잊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되뇌어야 하고 오답노트를 만들어야만 한다. 부패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부패를 저지르고도 당당한 그들의 모습을 만든건 대중의 망각이다. 언습과 행동을 물려받듯 부패는 기어코 다시 벌어졌고 무패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 반복의 역사를 깰 주체는 정치인이고 그들이 두려워할 시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