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칭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허위나 조작 정보, 불법 정보 등을 전파한 주체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케 명시한 개정안이 허위나 조작 정보 근절을 통한 민주질서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관측하기로는 찬반 양론 중에서 반대 여론이 우위에 있는 듯 보인다. 정치적, 당파적 생각이 은연중에 판단을 좌우하는 국내 정서를 감안할 때 여당 측에 우호적이던 다수의 목소리가 반대를 외치는 현 상황은 반대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허위 정보와 불법 정보의 악의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모호하고 주체 역시 정부 기관이라는 점이 사실상 검열에 가깝다는 점이다. 나아가 법안의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대상이 레거시 미디어로 확대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로 이어질거란 우려도 더해진 결과로 보인다.
허위 조작 정보가 짧은 시간 내 우리네 삶을 망쳐온 일의 심각성에는 동의한다. 카더라에서 시작되는 숱한 이야기들은 방향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를 쑤셔댔는데 대체로 이 말들은 누군가에게는 이익으로 돌아가는 법이어서 사태가 끊이는 일은 없었다. 적당한 사실과 버무려진 말들은 꽤 그럴싸해서 전략 자산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진실이 까발려질 틈도 없이 거짓들은 묻히기 일쑤였다. 쉽게 덮이는 풍토에 더해 너무 많은 거짓들에 노출된 사회는 어느샌가 진실을 궁금해 하지도 않는 처지로 나아갔고 거짓에 대해 구성원 개개인이 심각함의 정도를 품평하면서 분노할 지 말 지를 결정하는, 이상하리만치 관용적인 태도가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함으로 변환되는 유서깊은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사기 범죄에 대한 터무니 없는 형량은 그것을 무릅쓰고라도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와중에 사회는 그 사태에 분노할 뿐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공이고 사고, 위고 아래고 나서는 일은 없이 악만 질러대면서 우리는 거짓에 꽤 관대한 환경을 일구어냈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카더라에 그치던 말들은 첨단의 사기극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법안이 허위정보의 폐해를 근절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판단의 주체가 정부기관이라는 점에서 권한 침해 내지 남용의 소지는 농후하다. 현재에도 허위사실 유포라는 죄목은 이미 존재하고, 그에 대한 결정의 주체는 사법부에 있다. 비슷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구태여 다른 길을 추가해 결정의 주체를 바꾸는 일은 법리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합리성에도 의문 부호가 달린다. 이른바 엘리트들을 모아 법률 전문을 외던 법관 중에서도 판사는 소수의 상위권만이 진출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법을 잣대삼아 숙고끝에 내린 판결에도 가타부타 말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급조된 정부 기관이 법을 대체할 준거도 마련하지 못한 채 내린 결정이 사법부의 판단에 비해 나을게 무엇인지 나는 찾기 어렵다.
조항을 뜯어보면 '불분명할지라도', '전부 또는 일부' 라는 기술이 있는데, 마치 치어까지 싹쓸이 하는 촘촘한 그물처럼 어지간한 정보 전달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다. 쉽게 말해 공식적인 루트로 얻은 확실한 정보만을 전달하라는 의미다. 공식적인 정보는 정보라기보다 견해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쿠팡 사태에 대한 쿠팡의 입장은 쿠팡 자체의 주장일 뿐 정보 자체로 보기는 어렵다. 회사나 정부 기관에서 기자들을 불러 배포하는 보도자료 역시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 조금 더 나아가면 어떤 의혹을 받는 개인이 밝히는 입장은 (설령 사실이더라도) 일단 부인으로 시작된다. 그 사람의 공식적 입장은 '해당 일과 나는 무관하다' 인 셈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비공식적인, 혹은 익명의 제보를 통한 정보들이 사태를 파헤치는 열쇠가 된다. 차떼기가 그랬고 최순실이 그랬고 돈봉투가 그랬고 통일교가 그랬고 수 많은 의원들의 의혹들이 그랬다. 공식적으로 모두가 아는 정보는 사실 죽은 정보다. 권력이나 재물을 가진 상류층의 정보는 더더욱 빨리 죽는다. 언제나 부인은 입증보다 쉽고 빠르다. 살아있는 정보가 허위로 몰리기 쉬운 환경에 놓이고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왜 맞다고 우기느냐' 식으로 판단되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세상의 부패들은 발굴될 수가 없다.
판단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니 5배에 달하는 손해배상액 역시 의혹 제기의 의지를 꺾는 닻과도 같다. 어떠한 불이익도 발생하지 않는 지금도 일단 부정하며 시작하는 와중에 손해배상의 위험이 추가된다면 돈과 권력을 쥔 주체들은 더 열성적으로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서 나아가 개정안을 근거로 소를 제기할 선택지까지 생긴 셈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나의 임금체불 사건은 사실관계가 이미 인정됐으며 공식적인 민사 소송도 아닌 간단한 지급명령 사건이지만 현재 1년 6개월 째 완료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관계부터 다투어야 할 소송이라면 시간은 더 소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다 해도 수 년, 수 개월간 피고로 견뎌야 할 시간은 녹록치 않다. 특권층의 이른바 겁주기용 소송이 남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법안에 대한 재의 요구 행사 기한은 아직 남아있는 만큼 시행은 단정할 수 없다. 설령 시행된다고 해도 사전에 판단 기관 설립이나 판단 지침에 대한 밑작업으로 현재 제기되는 우려들을 조금은 불식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당정의 태도다.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고려를 떼어내고도 많은 사안에서 당정이 시행한 정책이나 발의한 법안들에서 기대했던 목표에 정확히 반대되는 결과들이 발생했다. 산재를 없애겠다는 강경책이 무색하게 이후로도 수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들을 비웃듯 거래가 말라붙은 지금도 아파트 가격은 묵묵히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정책이 의도한 대로만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정책 시행 전에 실효성에 대한 의문 내지 외려 폐해를 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강행되었다는 점이다. 알고도 맞는 일은 이만하면 됐다. 경험이 쌓인 만큼 이제는 우려도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 이리저리 휘둘려 떼었다 붙였다 누더기 법안을 만들 바에는 차라리 내려놓고 새로운 방법론을 고민하는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