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괴물이고 기생충인가?
사방에서 묻는다. 진짜 기생충은 누구냐고.
0. 넷플릭스에 <기생수> 애니메이션이 올라왔다. 원작 만화를 읽은지 오래 되었지만, 꽤 인상깊게,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바이러스 같은 솜덩어리들이 떨어지고, 그 안에서는 기생충 같은 벌레가 튀어나와 사람 몸 속에 침투한다. 벌레가 들어간 인간은 잠시 괴로워하다가 곧 멀쩡해지는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머리가 갈라지며 칼날이 입처럼 튀어나와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러니까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1. <기생수>의 남자 주인공인 고등학생 신이치 역시 기생충의 공격을 받지만 이를 오른손으로 막아내고, 기생충은 인간 전체가 아닌 오른손만 장악하게 된다. 신이치의 오른손에서 살게 된 기생충은 인간을 공격하기보다 숙주인 신이치를 지키는 역할을 하며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로부터 신이치를 지켜내고, 괴물의 특징을 알려준다. 감성과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 특징인 이 기생충은 역사책과 인터넷으로 인간 사회를 학습하다, 곧 깨닫는다.
신이치,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가장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인 것 같아.
2. 감성과 공감능력이 없는 기생충은 자기 종족의 행동이 무엇이 나쁘냐고 묻는다. 인간 역시 지구의 수많은 동식물들을 거침없이 잡아먹으며 살고 있지 않냐고. 자연을 파괴하고 장악하고 있지 않냐고. 그러니까 감성과 공감능력이 없다는 것은 결여가 아닌 '통찰(객관적인 판단과 윤리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기생수>의 설정이 된다.
3. 그런 점에서 뇌엽접제술을 통해 감정을 상실한 <비밀의 숲>의 황시목은 극 전체에서 <기생수>의 오른손이(미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첫 회에서 황시목은 박무성 살인 사건을 목격하는데 조금의 동요도 없이 바로 논리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다.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이 감정이 없다는 것은 객관적 정보에 따라 판단을 해야 하는 검사에게 있어서 장점이 된다. 문제가 되는 건 조직생활이다. 배려와 눈치, 복종으로 굴러가는 한국사회의 '조직생활'은 그 문화에 잘 맞춰있다면 조직이 굴러가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썩은 관행을 유지시키는 적폐가 되기도 한다. 감정이 제거된 황시목은 굳이 그 문화에 맞춰줄 생각이 없고, 그의 깔끔한 태도는 적을 만들어낸다.
감정이 없는, 군더더기 없는 태도는 적을 만든다.
4. 황시목은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고 유능한 인물임과 동시에 조직 사회에 찍힌 이단아이기도 하다. 황시목은 조직 사회 입장에서는 괴물이다. 그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이창준 차장검사를 주시하지만, 조직 사회에서는 상사에 대한 불복종일 뿐이다. 그래서 황시목은 이창준 차장검사에게 찍혀있다. 검사장 바로 밑인 권력자에게 찍힌 상태로 조직 생활을 해나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황시목은 그것을 해낸다. 왜? 감정이 없으니까. 감정이 없는 황시목은, 보통의 인간이 두려워하는 '미움 받을 용기'를 갖고 한국 사회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미션을 수행한다.
5. 감정이 없다는 건 정말 괴물일까?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소시오패스'가 될 뿐일까? 감정이 있어서, 우리가 같은 인간에게 너무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고 있어서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기생수>와 <비밀의 숲>은 어쩌면 같은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