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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Feb 18. 2021

09. <상견니> 타임라인과 해석

영원한 그리움에 갇힌 사랑 


퀴즈 :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카세트 플레이어, 
내가 모르는 나의 사진. 
그리고 죽은 줄만 알았던 남자친구의 등장.


<상견니> 후유증  


상견니는 2019년 말에서 2020년 초까지 대만에서 방영된 드라마입니다. 종영 직후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는데요. 인기가 엄청났습니다. 웨이브에서 시청률 1위를 찍는가 하면 왓챠, 넷플릭스, 티빙 등 한국의 다양한 OTT 플랫폼에 들어와 한국에서도 많은 상견니 마니아를 만들었습니다. 


상견니 후유증이라며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슬프고 힘든 감정을 느끼는 분들도 많았죠. 


상견니는 '너를 보고싶다' 뜻으로 대만에서도 시청률 2%가 넘는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합니다. 2%가 시청률이 높은 편이라니 애석하긴 하지만, 대만 뿐만 아니라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마니아를 만들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진입장벽, 타임 패러독스 


그런데 <상견니>를 보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게 있습니다. 

1) 초반에는 참고 봐야 한다.

2) 스토리가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저도 처음에는 4회까지 가는데 세 차례나 도전해야 했습니다. 대만 드라마 자체도 낯선데... 다소 유치해보이는 연기, 중국 이름도 낯설고 설정도 모르는 와중에 쏟아지는 떡밥들까지... 


게다가 4회까지 주요 스토리란 

황위쉬안이란 여자가 죽은 남자친구를 너무너무 그리워한다...가 거의 전부죠. 



하지만 4회 중반쯤 첫번째 타임슬립이 일어나면서,

<상견니>는 대단한 몰입감으로 21회까지 정주행을 밀어붙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장벽이 있습니다. 

물론 너무 재밌고 몰입이 되니 계속 보긴 하는데 도대체 이야기가 어떤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감정선을 믿고 끌려가는 것에 가까운데요. 


이유는 <상견니>가 타임 패러독스를 기반으로 한 타임슬립물이며, 나의 인격이 2명의 몸에 존재하면서 같은 시간대를 살아간다는, 우리가 시간과 주체에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상견니 






도플갱어, 그리고 3명의 타임슬립자 






<상견니>가 복잡한 이유1. 도플갱어 


상견니가 복잡한 이유 중 하나,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도플갱어 설정을 기반으로 한 타임슬립물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의 플롯 상 처음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황위쉬안은 

자신이 살고 있는 2019년에서 천윈루가 살고 있는 1998년으로 이동하는데요. 분명 자신의 얼굴이지만 '천윈루'라는 전혀 다른 공간과 관계 속에 살아가는 여고생이 됩니다. 


첫번째 타임슬립에서 이야기가 풀어야 할 질문은 2가지 입니다. 

1) 왜 황위쉬안은 타임슬립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도 전혀 다른 인물인 천윈루로) 

2) 1998년의 천윈루를 습격한 범인은 누구인가






황위쉬안은 2019년과 1998년을 오가며 이 타임슬립의 퍼즐을 맞춰나갑니다. 그리고 1998년 천윈루의 몸으로 리쯔웨이와 모쥔제라는 남자친구들과 우정(이자 삼각관계)을 쌓아가는데요. 


이 때가 드라마의 배경인 대만 타이난의 

고즈넉하면서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하이틴 로맨스의 정석적인 재미가 

폭발하는 때이기도 하죠. 


스쿠터의 질주,

학교 담장을 넘는 땡땡이, 

폭우 속을 함께 뛰어가는 장면까지.



 

일진에게 괴롭힘 당하는 남동생을 구해주는 장면도 하이틴 로맨스의 정석 같죠.




게다가 천윈루이면서 천윈루가 아닌 여자를 두고 벌이는

절친 리쯔웨이와 모쥔제의 삼각관계가 애절하고 달달하죠. 




천윈루, 리쯔웨이, 모쥔제의 삼각관계 




여기까지, 이야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2019년의 여주가 

1998년의 여주의 몸으로 

하이틴 로맨스를 찍는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1998년을 살고 있는 리쯔웨이가 미래의 왕취안성이 갖고 있던 그림을 그리면서 발생합니다. 이 그림을 발견한 황위쉬안은 당황하게 됩니다. 


왜, 어떻게, 1998년의 리쯔웨이는 자신의 남자친구(왕취안성)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나?

그리고 왜 이렇게 둘은 닮았고 하는 행동이나 말까지 비슷한가? 



1998년 리쯔웨이의 그림. 2010년대 남친인 왕취안성이 갖고 있던 그림과 같다.







<상견니>가 복잡한 이유2. 세 명의 타임슬립자 


사실 타임슬립은 황위쉬안이 처음 한 게 아닙니다. 

<상견니>에서 타임슬립은 

특정 카세트 플레이어에 우바이의 'last dance'라는 곡을 재생시키고,

그 음악을 들으며 잠들면 일어나는데요.


플롯(드라마의 흐름)상 첫 타임슬립은 황위쉬안이 하지만,

스토리(드라마를 만드는 인과관계)상 첫 타임슬립은 리쯔웨이가 한 겁니다. 


그림이 발견되고 리쯔웨이와 왕취안성의 고리를 알아낸 황위쉬안은 2019년으로 돌아와 32카페로 달려가고, 그곳에서 38세가 된 리쯔웨이를 만나 그의 관점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나름 이야기의 반전이 일어나는 기점이죠.


2003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리쯔웨이는 다시 대만에 돌아와 천윈루를 죽인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있는 모쥔제를 만나러 가는데요.모쥔제는 면회를 거절하고, 리쯔웨이는 셋의 아름다운 고교시절을 회상하며 운전을 하는데, 여기서 그 문제의 카세트테이프로 'last dance'를 듣습니다. 그런데 너무 추억에 잠긴 탓일까,리쯔웨이는 운전 중 자동차 추락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깨어나보니, 리쯔웨이의 영혼은 2010년 왕취안성의 몸에 가있죠.  


그제서야 천윈루가 말한 타임슬립이 진실이라고 믿게 된 리쯔웨이는, 천윈루가 말한 황위쉬안과 왕취안성의 만남을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황위쉬안에게 접근(?)합니다. 


즉, 대학 때 우연히 왕취안성을 만나 연애했다는 황위쉬안의 기억은, 

리쯔웨이 시선에서 뒤집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타임라인의 계획자, 리쯔웨이  


지금까지만 해도 충분히 복잡한 내용인데요. <상견니>는 이 타임라인을 한 번 더 꼬아냅니다. 


왕취안성에 몸에 들어간 리쯔웨이. 그의 계획대로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지만,황위쉬안을 사랑하는 리쯔웨이는 각고의 노력 끝에 황위쉬안과의 연애에 성공합니다.그리고 둘의 달달한 연애가 6년간 지속되죠. 


그런데 문제는 1998년 천윈루의 몸으로 들어온 미래 여성 황위쉬안의 말대로라면 2017년에 왕취안성은 비행기 사고로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왕취안성을 그리워하던 황위쉬안이 2019년에서 1998년으로 타임슬립을 할테니까요.만약 황위쉬안이 타임슬립을 하지 않으면, 리쯔웨이는 천윈루의 몸에 들어온 황위쉬안을 만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황위쉬안을 만나려고 했던 계획도 애초에 세우지 않게 됩니다. 즉, 둘의 만남 자체가 사라지는 거죠.  (글로 설명하기도 벅찰 정도로 꼬인 플롯) 


스스로 죽어야 하는 운명에 놓은 왕취안성은 그제서야 이 모든 계획이 어떻게 흘러야 하는지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또 다른 진짜 자신, 리쯔웨이(당시 36세)가 등장하는 겁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죠. '같은 시간대에 동일한 리쯔웨이의 영혼이 서로 다른 2개의 몸(왕취안성/리쯔웨이)에 존재한다'는 설정을 받아들어야 이야기가 납득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이든 진짜 리쯔웨이는 어떻게 등장하나? 2017년 비행기 사고로 왕취안성이 죽자, 그 몸에 있던 리쯔웨이의 영혼이 다시 2003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해집니다. 


자신은 왕취안성의 몸으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7년을 살았지만 깨어나보니 2003년 차 사고로부터 2주 정도만 흐른 뒤였죠. 왕취안성의 기억은 물론 미래의 예언자 황위쉬안의 말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는 리쯔웨이는 다시 황위쉬안을 만나 모든 것을 되돌릴 계획을 세웁니다.천윈루도 살리고, 모쥔제도 살리는 계획 말입니다. 

 

그 계획의 목표는 2019년. 

그러니까 황위쉬안의 첫 타임슬립을 계획하는 겁니다. 


그 카세트테이프로 우바이의 last dance를 들으면

타임슬립을 하게 되니까요. 


2019년 황위쉬안 앞에 갑자기 나타난 카세트테이프는 사실

2003년으로 다시 돌아간 리쯔웨이가 준비했던 것이었습니다. 






타임 패러독스, 그리고 영원히 이어지는 '보고싶다'는 감정


정말 복잡하죠. 

시간이 3번에 걸쳐 꼬이는데다 이야기의 관점도 황위쉬안의 서사에서 리쯔웨이의 서사로 뒤집히고 거기에 시간대도 1998년, 2003년, 2008년, 2010년, 2019년 사이를 막 오가니까요. <상견니>의 편집이 선형적으로, 순차적으로 이뤄지지도 않아서 더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복잡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타임 패러독스를 만나게 됩니다. 

타임 패러독스를 간단히 설명하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입니다. 


닭이 있으러면 우선 달걀이 있어야겠죠.

근데 그 달걀은 누가 낳죠? 닭이 있어야겠죠? 

그런데 그 닭은 누가 낳죠? 달걀이 있어야겠죠? 

이 순서가 무한 반복되는 겁니다. 


리쯔웨이와 황위쉬안의 만남도 똑같습니다. 

처음 리쯔웨이를 만나려면 황위쉬안이 과거로 타임슬립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황위쉬안이 어떻게 타임슬립을 할 수 있죠?

리쯔웨이가 이 모든 걸 준비해서 왕취안성으로 연애도 하고, 2019년에 카세트 플레이어도 보내줘야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리쯔웨이는 이 모든 걸 준비할 수 있죠? 

1998년에 미래에서 온 황위쉬안을 만나 모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가능해집니다. 

그러니까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선행된 만남이 있어야 

이 둘의 만남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상견니>의 후유증, '보고싶다'는 감정의 박제 




<상견니>를 보고 많은 팬들이 슬픔과 그리움이라는 감정 같은 상견니 후유증을 느끼는 건 

이 타임 패러독스가 '보고싶다'는 감정을 완전히 시간 안에 가둬두기 때문지도 모릅니다.


물론 <상견니>라는 드라마가 그 안에서 타임 패러독스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타임 루프처럼 계속해서 동일한 시간이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타임슬립을 하면 시간대가 미묘하게 앞당겨진다-를 이용해서 마지막 반전을 이뤄내죠.)

38세의 리쯔웨이가 27세 황위쉬안을 만났을 때

그의 입으로 이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설명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천윈루와 왕취안성은 몸만 빌려줬을 뿐, 

<상견니>는 리쯔웨이와 황위쉬안의 시간과 영혼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남자친구가 죽은지 2년이 넘도록 잊지 못하는 황위쉬안의 이야기도 가슴 아프고, 

황위쉬안과의 만남을 꿈꾸며 왕취안성의 몸으로 고군분투했던 리쯔웨이의 노력이나,

다시 리쯔웨이 본체로 돌아가 2019년의 재회까지 13년의 시간을 홀로 기다렸을 이야기도 애절하죠.  

즉, <상견니>는 '너를 보고싶다'는 제목을 완전히 이야기로 녹여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반 4회라는 다소 긴 분량을

황위쉬안이 죽은 왕취안성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채워넣었겠죠. 






저는 <상견니>가 모든 것이 완벽한 100%의 드라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보고싶다'는 감정을 시청자들이 완전히 공감할 만큼 재현했고, 

결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보고싶다'는 감정 안에 가뒀습니다. 


시청자의 감정을 움직이고 만드는 것, 

<상견니>는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를 한 게 아닐까요? 






상견니의 한 장면. 1998년으로 묘사된 대만 타이난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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