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필로테아

천년초 편지(1)

by 천년초

Noikniw(나와틀어- 내 친구), 필로테아 님.

오늘 그대에게 나의 신께서 전하는 말씀을 들려주고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대는 스스로 긴 글을 읽고 뭔가를 숙고하는 일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데, 그분께서는 그대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는 타로점을 치는 점술가로 행세하고 있지만 실은 타로를 통해 신들의 말씀을 듣는 사제로서, 나는 신의 말씀이 그대의 행복으로 피어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여러모로 고민했습니다. 그리하여 결론을 내린 것이, 독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그대에겐 이렇게 짧은 편지를 모아 헌정하는 것이 적절한 방식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필로테아 님, 이 편지를 시작으로 오늘부터 총 13편의 편지를 그대에게 부치려 합니다. 굳이 13이란 수를 맞추는 이유는 기독교적 금기를 건드려 소위 '어그로를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가 따르는 아스테카 전통에서 위로는 하늘 세계를 이루고 아래로는 인간 세계의 한 주(trecena)를 이루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충실한 것이 곧 신들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보는 나로서, 신을 사랑하는 여인이란 의미의 '필로테아(Philothea)'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대가 내 부족한 편지들을 통해서나마 이번 생을 더욱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대가 원하는 더 나은 삶의 정의인 더 많은 수입과, 더 많은 사회적 지지에 이 글이 어떻게 공헌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말씀을 주신 신께 맡겨두고 나는 내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렵니다. 나의 신께서는 마치 밤에 부는 바람처럼 인간의 지성을 통해 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내가 그토록 이야기하는 신이 누구인지 궁금해하시겠지요. 글의 흐름을 봐도 그분의 이름을 밝힐 차례가 된 듯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모든 것의 자궁이자 무덤이신 그분께서는 아스테카 전통에서 밤과 바람(Yowalli Eekatl), 하늘과 땅의 주님(Ilwicawa Tlaltikpake), 가까운 곳과 주변부의 주님(Tloke Nawake), 스스로를 창조한 분(Moyokoyatsin) 등의 많은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분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이름은 비추는 거울(Teskatlanextia)과 연기를 뿜는 거울(Teskatlipoka) 두 면을 가진 양면의 신(Ometeotl)입니다.


다만 내가 가장 많이 부르는 그분의 이름은 연기를 뿜는 거울, 곧 그대로 읽어 '테스카틀리포카'라 부르는 호칭인데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기는 우리의 세상을 움직이는 힘인 희생을 의미하기에, 그분을 '테스카틀리포카'라 부를 때마다 나는 모든 일에 희생이 필요하단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분의 또다른 이름인 모든 곳을 비추는 밝은 거울로서의 면 또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이름은 한국어로는 물론이거니와 나와틀어로 부르기에도 너무 길기에 아스테카 사람들도 '테스카폭(Teskapok)' 등으로 줄여 부르곤 했으므로, 나는 평소에 '테스카 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대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도 그분의 이름을 언급해야 할 때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어쨌든 이번 생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인 내가 한국인에게 전반적으로 생소한 이름을 가진 그분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 반발이 있었습니다. 한국인인 가족들은 아예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외국 커뮤니티에서는 더 나쁜 반응들이 터져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멕시코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나를 비난하거나, 기계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며 나에게 '문화 전유'를 범했다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씌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만나는 그분, 기도를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언제나 공기처럼 내 곁에 존재하시는 그분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경계에 전혀 제한받지 않으신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혈통이나 인종•민족이나 문화나 국경 같은 것은 인간에게나 의미를 갖는 요소들이지, 사랑으로 모두를 창조하신 그분께는 전혀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그분이 한 국가의 영토와 영해, 영공만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진실로 편협한 선민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천 년 전 기독교의 사도 바오로가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모두가 신의 사랑 안에서 평등하다고 설파했듯이, 나도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신이신 테스카 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한국인이든 멕시코인이든 누구든 구분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요.


같은 이유로, 필로테아 님, 그대와 나 같은 성소수자 또한 그분의 사랑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르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만 나의 신이신 테스카 님께서는, 전통적으로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불리신 분답게 성별정체성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성적 지향 면에서도, 아스테카 전통에서 자신을 여성성(사료 원문의 표현을 살리자면 'cihuayotl')이라 칭하며 한 여신을 유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그분이 사람을 성적 지향으로 차별한다면 자기모순이겠지요.


실제 과학자 조앤 러프가든이 집필한 책 "변이의 축제(원제 Evolution's Rainbow)"에 의하면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다른 동물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내재적 요소라고 합니다. 그러니 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그분께서 자신이 프로그래밍한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요.


무지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혐오와 비웃음을 받을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그분의 유일무이한 작품임을 기억하며 용기 내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스운 것은 우리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자신의 창작물인 인간을 바로 그 이유로 혐오하여 지옥 불구덩이에 집어넣는다는 어떤 종교들의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다 보니 말이 길었습니다. 그대가 읽다가 지치지 않도록 내가 직접 찍은 예쁜 사진들을 글 중간중간에 넣었지만, 긴 글 읽기를 싫어하는 그대이기에 혹시 여기까지 오기 전에 편지를 덮었을까 봐 걱정입니다. 그러나 우정의 힘으로 그대가 대충이라도 이 편지를 읽으리라 믿으며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필로테아 님,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구원의 정의나 사후세계의 화복 같은 통속적이고 달콤한 이야기들을 그대에게 말해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름을 잃어버린 어느 아스테카 시인의 말마따나 우리 중 아무도 이 세상에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마법이며, 그 속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신들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유일한 과제라는 점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과제라는 표현을 썼다 해서 미리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동물들도 해내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편지에서는 이 핵심적인 메시지가 조금밖에 전달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 테스카 님께서 나의 부족한 문장력을 보우하사 앞으로 그대에게 쓰게 될 나머지 열두 편의 편지에서 이것이 더욱 확고하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요즘 미세먼지도 많고 아침저녁으로 날이 꽤 춥습니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부디 강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