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소년의 김밥 에피소드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의 나는 스웨덴에서 6개월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원래의 학교생활에 다시 적응해 나가며 대학교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그리운 시기이기도 했기에, 당시 친하게 지내던 학교 선배가 미국에서 온 친구에게 현지인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며 같이 맥주 한 잔 마시자고 할 때 흔쾌히 응했다. 그 선배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그때 사귄 한국계 미국인 친구라고 했다. 이름은 ‘윌’이었다. 윌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한국인이지만 그는 한국말을 말할 줄 몰랐다. 평생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본인의 뿌리를 찾아 한국의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온 이민 2세대 친구였다.
우리가 간 맥주 가게에서 기본 안주로 구운 김을 내어 주었다. 윌이 자연스럽게 김을 한 장씩 집어서 먹는 모습이 신기했다.
“너 김을 잘 먹네? 내가 만난 유럽 애들은 ‘김’만 먹는 거를 이해 못 하던데. 내가 기숙사 거실에서 간식으로 김을 먹고 있으니까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었어. 김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초밥 같은 것에 재료로 사용된 것만 먹는다나?”
“난 부모님이 한국인이라니까?”
“아! 그렇네, 너는 김이 익숙하겠구나?”
“하지만 네 말이 맞아. 미국 애들은 김을 어색해하지. 어릴 때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에 엄마가 김밥을 싸줬었거든, 그날 엄청나게 놀림당했었어. 다들 샌드위치를 가져오는데, 나만 김밥을 가져갔거든.”
윌이 소풍 가서 김밥 먹으면서 놀림받은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씁쓸한 표정의 그가 말하는 ‘놀림당했다.’라는 것은 친한 친구들끼리 장난치며 시시덕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멍해져서 그냥 그 애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나는 입을 뗐다.
“걔들이 나빴다, 속상했겠네.”
그는 그때는 그랬지만 이제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대화에서 김밥 이야기는 더 길게 하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그의 김밥 에피소드만을 생각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김밥 나누어 먹는 추억이 그에게는 김밥을 먹어 놀림받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거였다. 우리에게는 즐거움과 따뜻함으로 남아있는 김밥의 기억이 그 애에게는 부끄럽고 차가운 것일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반평생 영어를 배우면서 상상해 온 미국, 그 나라의 책과 영화와 드라마를 수없이 보면서 상상해 온 미국,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던 미국은 더 이상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에게 미국은 오직 윌의 고향인 나라였다. 그가 살아온 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풍에 혼자서만 샌드위치 대신 김밥을 싸 왔을 한국계 소년의 모습을 상상한 순간 그가 여태껏 삶의 일부로 짊어지고 살아왔을 이방인의 무게와 앞으로 짊어지고 살아갈 무게가 느껴졌다. 내가 영화에서나 보고, 소설 속 이야기에서만 전해 듣던 그런 삶을 그 애는 직접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곱게 자라고, 친구들의 사랑과 한국적 정체성의 틀 안에서 안전하게 타지의 삶을 들춰보았다고 한다면, 들춰본 틈에서 새어 나온 타지의 삶에서 빛나는 부분 만에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 애는 내가 상상하며 동경하던 타지에서의 삶을 그 안에서 그대로 살아온 것이었다. 그 삶의 빛나는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모두 자기의 삶으로써 부대끼면서 살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그 타지는 더 이상 타지가 아니라 그 애의 고향이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그 타지가 그의 고향이 되는 것으로 예정되었었겠지만. 타향인 고향에서, 고향인 타향에서 그는 조금 다른 사람인 것에 익숙해지면서 자란 거였다. 내가 친구들과 너희 엄마 김밥, 우리 엄마 김밥, 김밥 가게 아줌마 김밥, 하면서 다 같이 김밥을 나눠 먹으며 자라는 동안 그는 다른 애들은 모두 샌드위치를 먹을 때 혼자서만 김밥을 먹는 특이한 아이로 자라 온 거였다. 우리에게 김밥은 함께하는 것이었고, 그에게 김밥은 혼자인 것이었다. 그렇게 평생을 한 편으로는 이방인으로 자라 온 것이었다. 내가 여행을 통해 가끔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 같은 감정을 어쩌면 그 애는 자기 인생으로 품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 애의 과거를 나는 모른다. 그 애가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살아왔을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애가 말한 김밥에 관한 한 가지 에피소드에서 내 생각은 제멋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애가 가진 특유의 너그럽고 평화로운 성품과 어떤 상황에 대해 달관할 수 있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지 나는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았다. 그런 것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도, 형제자매나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 놓이도록, 김밥을 외롭게 먹도록 운명 지어진 한 소년이 스스로 일궈낸 자신의 평화였다. 그 평화는 영원히 그의 삶에 함께할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영어로 풀어낼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리말로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 느낀 내 감정의 기억만을 마음에 담았다.
내가 한국계 미국인 소년의 김밥 이야기를 들은 것도 이제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아마 그가 소풍에서 김밥을 먹으며 놀림받았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이야기일 거다. 그리고 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2025년 지금, 세계는 한국의 '김'에 주목하고 있어 한국인이 먹을 김 물량도 부족할 지경이다. 인터넷에서 외국인들이 김밥을 먹으며 감탄하는 영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김밥을 먹을 때 놀림을 당할까? 옛 경험을 회상하며 세계에서 K-푸드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더 올라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