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왜 빠져들까

귀살대와 혈귀의 대립 속에 담긴 인간적인 서사

by Dada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진 건 초등학교 시절 ‘명탐정 코난’ 이후 처음이다. 특히 이번에 개봉한 "귀멸의 칼날:무한성 편" 극장판은 여운이 길게 남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남편을 '오타쿠'라고 놀려왔지만, 어느새 나도 ‘귀멸의 칼날’ 정주행을 완료하고 원작까지 찾아서 읽어보고 굿즈도 탐내고 있는 판에 남편을 오타쿠라고 놀릴 상황이 아니다. ‘귀멸의 칼날’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 걸까. 서사가 명확하고 개성이 다양한 캐릭터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와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액션 장면, 가끔씩 웃음이 나오게 하는 곳곳의 개그 요소 등 작품에 매력을 부여하는 요소는 많겠지만 오늘은 귀살대와 혈귀의 대립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귀멸의칼날 포스터.png 귀멸의 칼날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 구도

인간을 잡아먹는 혈귀와 혈귀를 잡는 귀살대의 대립, 이 단순한 선과 악이 대립하는 구조가 관객이 쉽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귀살대원들은 대체로 혈귀에게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다. 주인공인 탄지로는 가족이 혈귀에게 몰살되고, 살아남은 여동생은 혈귀가 되어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려고 하며 귀살대가 된다. 시노부와 카나에 자매는 부모님이 혈귀에게 살해되며 귀살대에 합류하지만 시노부는 이후에 언니 카나에까지 혈귀에게 잃는다. 암주 히메지마 교메이는 혈귀로부터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을 모두 잃는다. 이런 경험은 귀살대원들이 평범함 삶을 포기하고 혈귀를 잡기 위해 훈련하고 목숨을 거는 삶을 선택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혈귀들의 인간적인 서사

혈귀들이 죽는 순간에 인간이던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혈귀들은 대체로 인간으로부터 서러운 경험을 겪었다. 귀멸의 칼날 시리즈의 첫 번째 십위귀월 혈귀인 루이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몸으로 태어났으나 혈귀가 되며 힘을 얻는다. 하지면 힘을 얻으며 가족을 잃고, 가족애와 유대감에 결핍을 느낀 그는 다른 혈귀들을 모아 강제로 가족 역할을 시키며 폭력과 지배로 왜곡된 가족을 형성한다. 환락의 거리편의 상현 혈귀인 다키와 규타로 남매는 유곽에서 차별받으며 유독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인간이던 시절 서로 의지하며 생존했던 다키와 규타로 남매는 혈귀가 되어 ‘세상을 증오’하는 방식으로 살게 된다. 무한성편에서 주목받은 아카자는 아버지와 스승, 연인을 잃고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더 강해지고자 하는 집착으로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잃은 상처가 증오로 굳어졌다.


상실과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

귀살대와 혈귀 모두 인간으로서 상실을 겪고 상실을 준 대상에게 복수심을 갖는다. 귀살대는 혈귀를 전부 없애버리려 하고 혈귀는 인간을 모두 잡아먹어버리려 한다. 양쪽 다 ‘극단적인 복수 동호회’ 느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귀살대 쪽에 마음이 더 간다. 왜일까. 귀살대의 분노는 파괴가 아니라 보호로 향한다. 더 이상 혈귀로부터 피해받는 인간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두 ‘복수 동호회’ 모두 상실을 겪었지만 귀살대의 상실은 타인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전환되었고, 혈귀들의 상실은 타인을 희생하는 의도로 전환되었다.

귀살대와 혈귀는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실을 겪은 인간이 상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길을 선택한 결과다. 혈귀로부터 인간들을 보호하기로 결정한 귀살대원들은 팔을 잘라도 다시 팔이 자라고, 심지어 목을 잘라도 머리가 다시 자라나기도 하는 혈귀들과 칼 한 자루를 들고 맨몸으로 싸운다. 인간인 귀살대원들이 혈귀의 작은 공격에도 큰 상처를 입지만 인간이기를 추구하는 모습, 혈귀들의 마지막 순간에 비치는 인간성은 독자와 관객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여운을 남기며 우리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다.


귀살대와 혈귀들의 이야기를 보고 나면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상실과 고통을 겪고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극단적인 선과 악의 대립 속에 담긴 인간적인 서사들에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 관객들이 매혹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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