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으로 만드는 보라색 수육

남은 와인 소진하기

by Dada

신혼 초에 레드 와인으로 수육을 만든 적이 있는데, 남편은 지금도 가끔 그 ‘와인 수육’을 언급한다. 좋은 평가는 아니다.


“야, 그때 그 와인으로 끓인 수육이 나는 지옥에서 꺼낸 줄 알았어. 진짜 입 맛 떨어지는 색깔이었다고. 근데 의외로 썰고 나니까 안에는 하얗더라고? 그리고 먹으니까 뭐, 아는 맛이고 맛있고 해서 그냥 먹었지.”


내가 주는 음식의 외관에 대한 혹평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도 그의 혹평을 나무라기가 어려운 것이 보라색 돼지고기는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은 아니었다. 먹을 때는 별 말없이 맛있다고 했던 남편이 속으로는 그 돼지고기가 지옥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킥킥대며 웃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예쁜 자주색이었다.
와인으로 끓여 겉이 검붉은 색이 되어버린 수육

나름대로 집에 처치 곤란인 레드 와인을 소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남편이 술을 입에 대질 않으니, 와인 한 병을 따면 나 혼자서 다 마시기는 좀 버겁다. (그래도 따면 남편이 한 잔 정도는 같이 마실 줄 알았지만 절대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뒤로는 와인은 잘 사지 않는다.) 나도 주당은 못되어서 와인 맛이 변하기 전에 한 병을 다 비우기 어렵다.


와인을 소진할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하다가 와인이 고기의 잡내 제거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수육을 만들기로 했다. 마침 돼지고기 수육은 남편의 최애 메뉴다. 펄펄 끓여 알코올을 날려버려 남편과 함께 와인을 소진하고 수육도 만들어 저녁 메뉴를 해결할 수 있다니, 완벽한 아이디어 같았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남편이 한 시간 정도 뒤에 온다. 그 사이에 만들면 조리 시간도 얼추 맞았다.


그렇게 냄비에 두툼한 돼지고기와 양파, 대파를 넣고 남은 와인을 콸콸 쏟아 넣었다. 진한 자주 빛깔이 아주 예뻤다. 그리고 퇴근하고 수육을 보며 좋아할 남편을 떠올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와인 수육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수육을 끓이며 중간에 뚜껑을 열었더니 예쁜 자주색 바다 같았던 냄비 안은 검붉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돼지고기는 진한 보라색으로 착색되어 있었다. 와인으로 끓인 티가 아주 제대로 났다. 냄비 속 모습을 떠올리면 지옥에서 꺼낸 줄 알았다던 그의 말에 나도 공감하며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그때 남편은 군말하지 않고 나와 함께 보라색 수육 한 그릇을 해치웠지만 지금도 그 와인 수육에 대해서 가끔 언급한다. 돼지고기의 잡내를 꼭 와인을 콸콸 넣어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와인 수육 얘기를 하는 그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또 보라색 수육을 만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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