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행복해하면 내 마음은 약해져
남편은 옷을 다양하게 입는 것을 좋아한다. 객관적인 시선을 고려할 때 그가 옷발을 잘 받는 근사한 체격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내 시선에서는 옷을 좋아하고 아끼는 남편의 모습이 귀엽고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가끔 그의 옷에 대한 소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최근에는 일본 데님 브랜드의 청바지를 한 벌 샀다. 몇 달 전부터 일본의 데님 브랜드 몇 가지 종류를 언급하며 설명하더니 어느 날 특정 청바지 모델이 서울의 어떤 의류 편집숍에 있는 것 같다며 다녀오고 싶어 했다.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직원에게 말을 건 남편에게 직원이 찾아준 청바지는 인디고 색상의 짙은 청바지였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남편을 보고 나는 혼란했다. 집에서 입고 온 리바이스(levis)의 인디고 색상 청바지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갈아입은 건가? 입어보니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원래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건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내 눈치를 보며 ‘어때?’라는 표정을 짓는 남편을 보고 그것이 갈아입고 나온 ‘새 청바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울렛에서 행사할 때 운이 좋으면 좋은 브랜드의 청바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왜 입고 간 청바지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청바지를 또 사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와, 엄청 편해!’라고 말하며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 그 청바지를 사지 말라고 말리기도 어렵다. 게다가 입고 간 청바지와 구분이 되지 않으면 더 좋다고 한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자기 옷처럼 보인다는 뜻이라나. 입고 간 인디고 색 청바지와는 핏도 다르고 원단이 ‘헤어리(hairy)’한 감도 다르단다. 그렇게 나는 남편이 새 청바지를 집에 들이는 것을 지켜봤다.
그나마 어두운 빛깔의 청바지는 직장에 일상적으로 입고 갈 수 있다. 가끔씩 남편은 의류 편집숍에 걸려있는 데님 재킷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관심을 보인다. 가격표를 보면 가볍게 수십만 원을 넘어서는데 백만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그런 고가의 데님 재킷 앞에서는 남편이 아무리 애틋한 표정을 지어도 고개가 절레절레 지어진다. 직장에 입고 가기에도 애매하고, 결혼하고 함께 살면서 데이트하러 놀러 나가는 빈도도 연애할 때보다 줄었다.
새 청바지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행복해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합리적인 소비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힌다. 대신 ‘그래, 행복하려고 돈 버는 건데. 회사 또 잘 다녀보자.’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