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을 살며 지속되는 인연들

영원이라 믿은 그 시절의 우정

by Dada

고등학생 시절, 우정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다. 나의 그녀는 예쁘고 그림을 잘 그렸다. 무엇보다 그녀의 생각을 듣는 것이 좋았다. 학교에서 일상을 함께 보내고, 주말에는 집 근처에서 산책을 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선생님들, 유명한 작가들, 화가들, 우리의 가정사, 진로 같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다.

내가 대학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를 껴안았다. 그런 격한 축하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다시 받아본 적이 없다. 그녀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는데, 그녀가 재수하는 동안 나는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만나러 나가려고 애썼다. 우리가 공유하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이가 완벽한 이유는 남녀사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별할 필요가 없었고, 이별할 수도 없었다. 미대에 진학한 그녀의 실력이 느는 것을 지켜보는 게 흐뭇했고, 해가 지날수록 그녀의 복잡한 세계관이 투영되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에 감동했다.

여고생의 우정을 그려줘. (출처: 뤼튼 AI)

영원히 그녀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지만, 대학생 고학번이 되면서 만남이 뜸해진 것 같다. 각자 대학생활을 하면서 어울리는 친구들도 달라졌고, 관심사도 달라졌다. 이공계열인 나는 석사를 할지, 취업을 할지 고민했고, 그녀는 작품과 전시회, 이런 것들에 매진해야 했다. 각자의 삶을 책임질 방법을 당장 모색해야 하는데, 우리가 만나서 할 수 있는 대화는 더 이상 두 사람 모두에게 생산적이지 않아졌던 것 같다.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서로에게 힘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즈음에는 그녀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세상 모든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사이였지만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우리의 관계를 아주 많이 곱씹어보았지만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서로의 일상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 친구와는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존경한다. 서로 존경한다고 말로 하지는 않지만 그냥 알고있다. 수많은 하객들 속에서 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 해주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영원히 기억할거다. 한 때는 우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슬퍼했지만, 이제는 우정이 다른 모습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많은 관계들이 세월에 따라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 곁에 머문다. 꼭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소중한 관계인 것은 아니다. 서로 소중하게 대하며 교류했던 시간을 마음 속에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다면 비록 지금 자주 만나지 못할지라도 이어지고 있는 인연이 아닐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매트를 펴기까지 3시간, 매트 위에서는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