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자런, 랩걸 - 독서 후기
"랩 걸"이라는 제목은 ‘랩순이’로 읽는다면 한국의 대학원생들에게도 친숙하게 와 닿을 것 같다. ‘랩순이’는 랩(실험실)에 붙잡혀 있는 석박사 대학원생들이 스스로를 부를 때 종종 쓰는 말이다. 랩순이라는 단어 속에는 ‘개인 생활이 없이 랩에 갇혀서 실험만 하며 연구에 종속된 삶을 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물론 그 생활을 즐기는 대학원생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조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 속 ‘랩 걸’에게 “랩”은 그래프의 완벽한 선에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고, 궁금해하던 수수께끼들을 풀어나가며 동료와 교감하고 성장하는 인생의 장이다. 어린 소녀시절부터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임신한 상태로 출근하다 쓰러진 뒤 본인의 실험실 출입을 금지당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쫓겨났다고 느끼며 집에 와서 흐느끼는 그녀에게 랩은 온 우주다.
나도 학창시절에 ‘과학자’를 꿈꿨었다. 과학자를 꿈꾸며 석사생활을 시작했지만, 작가처럼 실험실에서 우주를 찾지는 못하고 석사가 끝나는 대로 취업 자리를 구해 지금은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일하면서 과학자를 꿈꾸던 그 시절의 마음을 상기하기도 하기에 ‘랩 걸’의 이야기에 더 몰입되었다. 작가의 소소한 발견과 특별한 발견들에 함께 설레하고, 그녀가 해주는 식물들의 속사정(예를 들면 식물들이 사막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겨울은 또 어떻게 견뎌내는지)을 들으며 식물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에 경외심을 느끼기도 하고, 재치 있는 그녀의 글솜씨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과학자를 꿈꾸는, 꿈꿨던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소중하게 읽은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을 몇 가지 꼽자면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재능’, ‘저자의 남자 사람 친구 ‘빌’과의 파트너십’,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읽기 쉽게 술술 풀어내는 글 솜씨’ 였다.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한 번씩 풀어보려고 한다.
1. 연구에 대한 열정
먼저 ‘연구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그녀의 호기심과 열정은 책을 여는 순간부터 이 책의 마지막 순간까지 느낄 수 있다. 나무의 초록색 이파리에 대한 이야기로 프롤로그의 절반 이상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녀는 꼭 초록색 이파리를 가진 것 들에만 진심을 다하는 것은 아니기도 한 것이 대형 병원의 약국에서 일하던 시간도 아주 흥미롭게 표현한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병원은 ‘아픈 사람을 가둬 두고 그 사람이 죽거나 나을 때까지 계속 약을 주입하는 곳’ 이지만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병원의 약국에서 약품을 정리하고, 혈액을 관리하고, 처방전에 따라 수액을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로 느껴진다. 아마도 그녀는 눈 앞에 닥친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 항상 진심으로 열심히 임하도록 유전자에 설계된 사람일 것이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그녀는 선임을 능가할 정도로 업무에 능숙해진다. 약국 업무가 능숙해지자 그녀는 따분함을 느끼기도 하고, 처방전대로 약을 처방할 뿐 결과적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다는 약국 업무의 한계에 권태로움을 느껴 다른 일자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발을 들이게 된 실험실 업무를 통해 식물 연구를 하기 시작하며 인생의 전부를 얻게 된 듯하다.
버클리, 조지아 공대, 존스홉킨스 대학, 오슬로, 하와이로 이어지는 그녀의 커리어 이야기는 단순히 과학자로 능력을 인정받기까지 연구 성과들로 나열된 것이 아니다. 인생의 매 단계에서 그녀가 어떤 문제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실감나게 서술한다.
책의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서 그녀는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연구’라는 것이 무언가 보이는 실체를 만들어서 팔아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연구소는 돈을 쓰는 조직이지 돈을 벌어오는 조직은 아니다. 작가도 본인이 하는 연구가 물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돈을 주는 조직(기업이든 정부이든)에 내가 하는 일이 돈을 들일 만 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 연구자의 숙명이겠지만, 학교에서 일하면서 본인의 연구실을 운영하기 위해 정부 기관의 돈을 따내는 것은 기업에서 월급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직업 같다. 본인의 연구를 홍보하고, 연구비를 따 내 실험실을 운영하기 위해 그녀는 장거리 로드 트립을 동반한 학회 참석도 마다하지 않는다.
책에는 그녀가 연구자로서 인정받고 정착하기까지 ‘여성’으로서 고민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마도 그녀가 활동하던 시기만 해도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이리라 예상할 수 있다. 약국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절부터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남자에게 구속받는 삶’을 두려워한다. 아마도 그녀의 시대에는 남편을 내조하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가는 여성이 많았을 것이고, 그녀의 눈에는 그 삶을 사는 여성 어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기성 과학자들이 여성 과학자를 낯설어 하며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도 하고, 임신한 상태로 실험실에 출근하는 과학자를 처음 겪는 학과장이 출근을 금지하는 등 유리천장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성공한 여성 과학자의 삶을 살게 된다.
나도 한 여성으로서 ‘여성’ 과학자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같은 과학자가 아닌가. 남성 과학자라고는 하지 않으면서 왜 여성 과학자에게만 ‘여성’이라는 말을 붙이는 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종종 사용하는 ‘여성과학자’라는 단어는 ‘여성’ 이라는 말을 붙일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녀가 겪은 경험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성과학자'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그녀가 일하던 시기에는 아마 여성 연구자가 많지 않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겪은 불합리한 상황들을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겪지 않고 있지만 아마 앞선 시대에서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먼저 경험하고, 기존의 남성 세대와 소통하며 능력을 인정받아온 덕분이지 않을까 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인생 이야기 틈틈이 나무와 흙의 생태계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녀가 하는 식물 이야기는 어떤 식물 서적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다. 일반인이 어떤 버드나무는 자신의 가지에 예비 식량을 저장한 뒤에 물에 실려 흘려 보내 1.6킬로미터까지 자신의 분신을 보내 새로운 버드나무로 자라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논문이나 전문 서적을 찾지 않고서 알 수 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해주는 식물 이야기는 논문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재밌다. 식물을 묘사하는 문장들마다 식물이라는 완벽한 개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묻어난다. 숲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갖은 수를 쓰며 햇볕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덩굴을 향해 그녀는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야심차다’고 표현한다. 나무와 공생하는 곰팡이에 주목하며 곰팡이가 ‘혼자서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외부의 위협에 식물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해 그들이 어떤 행동들을 해왔는지 설명하는 그녀의 글에는 식물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뿐 아니라 따뜻한 시선이 잔뜩 묻어 있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은 독자의 마음에도 식물과 자연에 애정을 불러 일으킨다.
식물에 대한 사랑, 과학자로의 직업에 대한 열정, 여성 과학자로 업계에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 없이 설명할 수 없는 책이다.
2. 빌과의 파트너십
그녀의 이야기에서 식물 이야기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빌과의 관계였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그녀의 연구를 위해 함께 평생 헌신한 빌과 결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내심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기대하며 읽었지만 작가는 다른 인연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빌을 소중한 형제로 대하며 좋은 인연을 이어 나간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모든 글이 빌의 허락을 받고 쓴 것이라고 언급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된 것이 빌이 원하기도 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 이 책이 빌을 위한 것이기도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며 책이 마무리된다.
버클리에서 학위를 하며 우연히 알게 된 빌과 작가는 평생에 걸친 연구 인생에서 동고동락하게 된다. 빌은 그녀가 월급을 변변히 주지 못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녀의 제안에 캘리포니아에서 아틀란타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아틀란타의 그녀의 실험실에서 일하며 집 없이 밴에서의 생활을 불평하지 않고 실험실 업무에 본인을 바쳐 일한다. 단순히 식물과 연구를 사랑한다고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저자가 ‘팽나무 오팔’ 실험에서 결과를 확인하고 스스로 연구자로서의 가능성을 느끼고 설레 하며 각성된 상태로 기기실에서 밤을 지새운 뒤 돌아온 실험실에서 가장 먼저 그 감동을 공유한 사람도 빌이고, 학회 참석을 위해 약간은 고집스러울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된 학생들과 함께 한 로드트립에서 전복 사고가 났을 때 함께 책임지고 해결한 사람도 빌이었다.
책에 묘사된 그의 실력이라면 이미 성공한 교수들의 더 큰 실험실이나, 기업에 취업을 해서 보다 안정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 같은데, 빌이 어째서 당장 월급 주기도 벅차 하는 초보 교수인 그녀 곁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그녀를 도와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그들의 관계성과 빌의 마음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작가의 실험실에 창립 멤버로 참여해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율성’과 ‘정서적 안정감’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틀란타에 처음 실험실을 꾸릴 때부터 작가와 빌은 함께 빈 공간을 연구실로 만들어 나간다. 장비를 구하고, 공간을 꾸미고, 실험실의 규칙을 세우는 그 모든 과정에 빌은 교수의 제자나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동업자로서 참여한다. 또한 급여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실험실의 재무 상황을 저자가 빌에게 정확하게 설명하면 빌이 수긍한다. 어떤 연구 과제를 통해 얼마의 연구비를 따올 수 있는지 빌에게 공유하고, 실험실의 가장으로서 연구비를 조금이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빌이 온전히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빌과 저자가 함께 저녁을 먹고, 두 사람이 나누는 농담 속에서 그들의 편안한 관계를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뒷부분에 가서야 빌이 손가락 일부가 없다는 사실이 언급되는데, 빌은 자신의 손가락 개수에 개의치 않고 그의 실력을 온전히 신뢰하며 일을 맡기는 저자와 함께 일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당장의 실험실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유능한 동료를 곁에 두며 함께 실험실을 운영해 키워나가는 것이 저자의 교수로서의 리더십이 아니었을까. 빌과 그녀의 관계를 통해서 우정과 파트너십, 그리고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이 책의 묘미다.
3. 술술 읽히는 글 솜씨
좋은 글은 재미있고, 잘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400여 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의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살던 마을에 대한 이야기부터 약국에서 일하던 시절, 초보 연구자로 시작해 교수로 자리잡기까지의 여정, 그 모든 이야기에 마치 내가 저자 본인이 되어서 그 일들을 함께 경험하는 것처럼 몰입하고, 그녀의 재치에 웃음을 터뜨리며 읽었다. 과학자가 되기 전에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문학 전공을 했다고 했는데, 문학을 전공하기까지 충분한 사정이 있었을 것 같다.
그녀의 글쓰기는 복잡한 과학적 원리를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그녀의 식물에 대한 사랑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번역가’의 글쓰기 이기도 하다. 독서의 난이도를 낮추면서도 식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진화하고 생존할 수 있었는지 과학적으로 독자를 이해시킨다. ‘쉽게’ 쓰는 것은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의 숙제이지만 ‘쉽게’ 쓰기는 의외로 ‘쉽지’ 않고, 특히 전문적인 내용을 서술해야 할 때 ‘쉽게’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녀가 나뭇가지에서 이파리가 떨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먼저 엽록소가 잎맥과 가지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좁은 세포 다발 뒤 쪽으로 이동을 한’ 뒤에, ‘이 세포 다발들에서 물이 빠지면서 약하고 바삭바삭해진다.’고 설명한다. 나뭇가지에서 이파리가 떨어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온 대중에게 그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매력적인 사건인지 과학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이해시킨다.
작가의 글쓰기에는 정확한 관찰과 특유의 담백한 유머감각, 비유가 담겨있다. 그녀의 탁월한 비유 솜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낙엽수의 삶과 과학자의 삶을 비유하는 장면이다. ‘낙엽수의 삶은 연간 예산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면서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각각의 이파리에 색소를 잘 배치하고 이파리들의 위치를 잘 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파리에 대한 경영 전략을 잘 세운 나무가 오랫동안 살아남는다고 말하며 ‘학계에서 활동하는 과학자의 삶은 3년 예산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목차는 작가 인생 전체에 대한 비유다. 1부 뿌리와 이파리에서는 그녀의 어린 시절, 문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에서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기 까지를 식물의 뿌리와 이파리에 비유했다. 2부 나무와 옹이는 그녀가 과학자, 교수로서 학계에 자리잡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3부 꽃과 열매에서는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느정도 인정받는 과학자가 되어 인생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인생을 식물의 생태에 비유하는 그녀의 개성은 아마 진지하게 식물을 사랑하며 평생을 바치며 문학적 감수성도 잃지 않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같다.
책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그녀는 과학을 ‘직업’이 아니라 ‘삶의 자세’로 바라본다. 실험이 잘 되지 않더라도 다시 시도하고, 연구비가 부족하더라도 어떻게든 마련할 방법을 모색한다. 새로운 제자를 들일 때에는 과학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맞는 제자를 찾는다. 그리고 그런 과학자의 삶 속에서 그녀가 애정하는 다른 활동인 글쓰기도 이어 나간다. 나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일에 임하는 그녀의 태도는 내가 일을 하던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주변의 기반 환경이 부족할 때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보다 불평을 먼저 늘어놓는지는 않는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몇 번의 시도에 금방 지쳐버리고 포기하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녀는 일생 내내 끈질겼다. 연구에서도 끈질겼고, 결혼 후 소원해진 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도 끈질겼고, 글쓰기에도 끈질겼기 때문에 우리가 그녀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매력을 내 실력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식물의 생애를 빌려서 인간의 생애를 이야기한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실험실, 과학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면서 읽으며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책일 것이다. 실패와 성장 사이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 자신의 삶을 더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경험담을 전하는 과학자의 편지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