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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망지 Oct 28. 2022

하늘은 옷을 몇번이나 갈아입는 걸까요

두시부터 다섯시간, 열두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벌써 열두번째 편지네요. 작심삼일을 4번이나 반복한 셈이니까 저는 제대로 안착한 게 맞겠죠? 오늘의 청각적 딴짓은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앨범 전곡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이마저도 비참한 것은, 언제 저를 부를지 모르기 때문에 에어팟 속 주변음 허용 기능을 사용하고 들어요. 그말은 즉 사무실에 울려퍼지는 저 블루투스 스피커의 다양한 노래소리들을 함께 수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노래가 섞여서 들리네요. 뇌의 자극엔 아주 좋겠어요.  


저는 해가 떠있을 때 낮잠 자는 걸 참 좋아합니다. 그러한 여유섞인 게으름과 나태를 사랑하는 편이죠. 근데 그게 가장 취하기 힘든 사치라는 걸 이젠 알았어요. 평일엔 당연히 생각조차 못할 일이고, 주말엔 누워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해가 떠있는 동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요. 아무튼, 겨울이 성큼 오고 있습니다. 사실은 가을이 먼저 오는 게 맞긴 하지만, 가을은 속임수일 뿐 겨울이 더 파급력 있고 강력하잖아요. 1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하루의 절반 이상이 밤이 되는 시간이 옵니다. 그니까 낮보다 밤이 더 길어지겠고, 나는 광합성도 못하겠죠. 퇴근할 때 이미 시커매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가 금새도 저물었구나,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그 냄새가 맡아집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짤막하게 바라보는 요즘의 하늘은 어쩜 그리도 청명하고 푸른지, 배가 다 아픕니다. 이런 날은 나가서 마음껏 누워 뒹굴어야 하는데, 작년에 나태로이 누웠던 나의 옥상과 나의 해먹이 떠오르고, 지난 학기 부지런히도 찾았던 학교의 중앙광장이, 가까운 여름 내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영국의 공원들이, 그 모든게 전부 온실 속 감나무 같이 느껴지네요. 허황되고 말이 안 된다구요.  


시침이 시치미 떼며 시계를 뱅글 돌아가는 동안, 하늘은 옷을 몇번이나 갈아입는 걸까요. 문득 3년 전 학보사 기자시절에 썼던 제 칼럼이 너무도 매끄럽게 잘 맞아서, 오늘은 예전의 글을 붙여 쓰고 이른 안녕을 말할게요.

주말 간 너른 휴식을 취하고 돌아올 다음주의 편지를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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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색을 빌린다 


구름의 경계는 언제든 뭉특하다. 솜사탕이 아이의 손에 의해 찢긴듯이, 구름 또한 그런 형체를 지니고 있다. 초등학생 사촌동생의 여름방학 숙제를 도와주다 그림일기의 모든 장면마다 존재하는 공통점을 발견하였고, 그것은 10여년 전의 나의 그림과도 매우 닮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 구름은 경계가 없고 뭉특한 테두리를 지니고 있다. 아이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릴 땐, 우린 이기적으로 그 구름들을 구획해버리곤 했다. 

우리가 오역해버린 것은 구름의 태두리가 다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색은 인공적인 명명일 뿐이다. 그림을 그림에 있어서 흰색과 하늘색의 경계, 우린 그 경계가 필요했고, 아이의 시선에선 그저 직관적으로 하얀 구름과 대비되는 파란 하늘만이 들어왔을 뿐이다. 

당신에게 하늘은 무슨 색인가? 하늘에 색이 있던가? 하늘은 색을 잠시 빌리고 다니는 존재이다. 시간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그리고 가끔은 계절에 따라서 색의 농도를 달리하며, 세상에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 수없이 많은 색 중 하나하나를 교묘하고도 적절하게 빌리고 다닐 뿐이다. 빨갛고 노랗고 푸르고 검고, 우린 하늘의 수없이 많은 색들을 봐왔으면서, 어쩌다 '하늘색'이라는 걸 규정했을까? 

흔히 접하는 색 체계에서 이러한 오역들은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의 편리를 위해 사물의 단편적인 모습을 그의 전체 모습인 양 고정하고 인식하며 이름까지 붙여 온 건 아닐까? 쉽게 당신이 불러왔던 무수히 많은 색들의 이름을 찬찬히 되짚어보자. 색채 이름에 의해 고정된 우리의 사고를 풀어줄 겸 잠시 우리가 알고 있는 색의 이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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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9월 23일 PM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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