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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망지 Oct 27. 2022

우린 분명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었는데

두시부터 다섯시간, 열한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이 브런치를 근무중 쉬는시간의 한 수단으로 애용하게 되면서, 참 내 맘과 같은 글들도 많이 발견해요. 특히 요즘은 자꾸 해외여행, 해외취업, 해외살이 이쪽 카테고리를 눈여겨보게 되는데, 올해 외국 친구들이 부쩍 많이 생긴 제게 엄청난 공감을 불러 일으킨 글이 있었습니다.


살포시 여기 옮겨와보도록 할게요.  




많은 외국 친구들을 알게 될수록 많은 이별을 겪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보고싶을 때마다 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기약 없는 만남을 또다시 기약한다 

같은 나라에서 자란 사람들도 너무나도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흥미롭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의 고민들을 바라보게 되어 내가 당연하게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그게 아님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이유이자 ‘인문학’이 대두되는 이유이고, 나에게 너무도 큰 즐거움이자 계속 외국에 나가고자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이 유독 다가왔던 이유가 있죠. 어제 밤에 캐나다에 있는 에이슬린과 통화를 했거든요. 에이슬린은 참 따뜻한 친구예요. 제가 리즈에서 사귄 모든 친구들이 그러하듯 다들 저보다 나이가 어린데, 에이슬린은 이상하게 언니 같아요. 아주 똑부러져서 같은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제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것저것 덤벙대는 저를 잘 챙겨줬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FM같아 보이길래 제가 선입견이 있었어요. 아주 모범생에 엘리트라 나를 한심하게 볼 것이라고. 전 서양인 사대주의가 있으면서도 심각하게 경계하고 의심하는 경향도 있는 이중적인 사람이라… 아무튼 첫인상은 그랬다구요. 그치만 친해지다보니까 이렇게 잔잔한 또라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해사하고 해실해요. 자그만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불쑥불쑥 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불시에 제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순식간에 엽기적인 표정을 곧잘 지어냅니다.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거리낌이 없는 친구예요.  





그리고 이상한 매력의 고집도 있어요. 리즈 여름학기의 마지막 주말, 친한 친구들끼리 스코틀랜드여행을 가자고 머리를 맞대어 계획을 짜려하고 있는데, 에이슬린은 곧죽어도 아일랜드 여행을 가고싶다며, 홀로 새벽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런 고집을 부리는 애지만, 제가 런던에 있을 땐 또 일정 수정해가면서까지 노팅힐 마켓으로 와서 한 시간동안 밖에서 서서 수다를 떨어주기도 했죠. 에이슬린은 그때 캐나다에서 오신 어머니와 함께 런던 여행중이었는데, 노팅힐에 오는 시간을 조정해가면서까지 저를 만나겠다는 고집을 피운 모양이에요. 아! 맞아요 에이슬린의 어머니 켈리도 만났어요. 두 모녀는 너무도 닮았고, 따뜻하고, 멋있어요. 켈리의 백발숏컷이 너무 멋있었는데, 단 한시간만 이야기를 나눈게 전부라 아쉽네요. (제가 그때 뒷 일정으로 레이디가가 콘서트를 갔거든요)  그리고 에이슬린은 환경운동가예요. 비건도 실천중이라, 매번 함께 식사를 할 땐, 자기가 먹을 후무스를 싸가지고 다녔어요. 근데 제 입맛에도 맞아서 제가 종종 뺏어먹기도 했죠. 그때도 에이슬린은 아낌없이 웃으며 퍼줬던 것 같아요. 


에이슬린이 맨날 가지고 다니던 핑크색 텀블러가 생각납니다. 이 아이는 엉뚱한 면도 잇는데, 텀블러에 붙어있는 라벨지 스티커엔 H20라고 적혀있었어요… 물의 화학식이죠… 다같이 클럽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땐 또 얼마나 웃겼는지, 나는 팝송을 잘 모르지만, 개네한텐 거의 멜론 탑100노래가 주구장창 나오는 셈이었더라고요. 흥을 주체 못하고 잔뜩 립싱크 하는 모습이 거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제가 가사만 전부 알았다면 아주 그냥 이겨먹는건데 말이죠. 


 또 웃긴 점은, 그녀는 리즈 기간동안 먹고 있는 약 때문에 음주를 전혀 하지 못했어요. 생각해보니 난 그 아이와 술을 같이 마신 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 우린 취한듯이 신나게 놀았고, 취한 듯이 솔직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눴어요. 그 애는 내 이별이야기를 듣고 감정이입을 심하게 해서 눈물짓기도 했고, 나이가 한두살 많다는 이유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유독 큰 저를 자주 다독여주었어요. 영어에 자신감이 없던 부분도 특히나요. 왜냐면 매번 그 친구가 제 영어를 옆에서 교정해줬거든요. (이것도 초반엔 엘리트라는 선입견 때문에 재수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정이 많은 친구였습니다) 밤마다 긴 이야기들을 다같이 나눌땐, 항상 제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제 미래에 대해 저보다 더 희망차게 전망하고 있었어요. 제가 뭐가 될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된대요. 무엇을 하든 아주 멋진 사람이 되어 빛날거라고. 아주 똑부러지고 사랑스러운 나의 캐나다 친구. 헤어질때가 되어서는 자기의 다이어리를 찢어 쓴 편지를 제게 주었어요. 그리고 매번 이 마지막이 진짜 마지막이 아니라고 알고있기 때문에 슬프지 않다 했죠. 실제로 리즈에서 슬픈 안녕을 말했지만 2주뒤, 서로의 런던 마지막 날 밤 11시에 킹스크로스 역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거든요. 그때의 인사도 결코 마지막 인사는 아니었을 거예요. 

왜냐면 어제 정말 오랜만에 페이스타임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거든요. 캐나다로 돌아간 에이슬린과 한국에서의 저의 시차는 13시간. 그냥 하루의 정반대에 있다고 보면 돼요. 


시차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하고, 기묘한 것입니다. 우린 분명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젠 너무도 다른 라이프사이클을 달리고 있잖아요. 나의 낮은 그녀의 밤. 뭐 항상 이런 정반대를 달리는 셈이죠. 그래도 디지털로라도 연결되어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제 영어는 그들과 함께할 때에 비하면 하염없이 곤두박질 쳤지만, 어찌저찌 마음만은 전달되었길 바라요. 똑순이 에이슬린은 내년 4월에 졸업한답니다. 저는 2024년에 졸업할것같다고 말하니 굉장히 놀라더라고요. 앞서 말했지만 에이슬린은 저보다 3살이 어려요^^ 아무튼 그래도 절 이상하게 보진 않더라고요. 전 동안의 동양인이니까, 대충 시간이 많습니다(라고 저는 생각해요) 에이슬린은 영어문학과 영어교육을 전공중인데, 한국에 들어와 영어선생님을 하고싶대요. 이 이야기는 리즈에서 둘이 밤샘공부할때 말해줬던건데, 그때도 너무너무 기뻤지만, 이렇게 졸업 후 계획을 물어봤을 때에도 같은 답변을 하는 걸 보니, 진짜로 그녀를 한국에서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설렙니다. 졸업도 그 후의 꿈도 척척 생각해놓은 똑순이 에이슬린,,, 저도 이 동생을 본받아야겠어요. 그리고 제게도 지금까지 틀린 영어 교정을 잘 해주는걸 보면 에이슬린은 참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될거예요. 


아, 그래서 말인데, 그애는 여름까진 캐나다에 있다가 천천히 그 다음해쯤 한국에 건너갈 것 같다고 말하면서, 캐나다에 놀러오라고 아주 솔깃한 제안을 하더라구요. 저에게 그 해 여름은 곧 교환학생 종료 후, 찐 막학기를 앞두고 잇는 마지막 여름방학이고, 그녀에겐 졸업후 마지막 고향에서의 여름인 셈이니까요. 전 제가 여유돈이 있다면 꼭 놀러가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사실 마음은 지금 너무도 동요 되어있고요. 돈이 문제네요. 더 벌어야죠. 


고작 2주로도 이렇게나 정이 들어버리고 긴밀한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정이 많아도 너무 많아 가끔은 문제지만, 또 이런 인연들을 상대적으로 쉽게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선 스스로의 이런 점이 참 좋아요. 그리고 항상 아쉬워요. 언어가 같지 않아 제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원형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어서, 그게 매번 아쉽더라고요. 내가 하고픈 말은 더 큰 것들인데, 허접스러운 영어로만 발화가 되니까요. 그럼에도, 장벽을 기어올라 이렇게 모두 친구가 된 걸 보면 정말 we are the world 가 맞는 말 같습니다. 

가슴을 열면 우린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네요.


친구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늘이다보니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친애하는 여러분 모두 모두 소중하고 애정합니다. 정이 많은 제가 그득그득 정 붙이고 다니는 존재들이니까요.  

내년 여름의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살포시 캐나다의 여름을 만끽하는 나를 상상해주세요


객기와 용기를 여기에 두고,

2022.09.22. PM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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