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부터 다섯시간, 스무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제 아침 출근길에 대해 풀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출근하는 곳은 홍대 번화가의 완전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상상마당 건물이 있는 메인스트리트 쪽에서 안쪽 길로 두 블럭 가다보면 나오는 곳인데, 뭐 자세한 위치는 중요치 않고요. 매우매우 번화한 핫 플레이스를 지나서 출퇴근을 이겨내야한다는 뜻입니다.
출근길은 쉽습니다. 오전 시간에 홍대에 사람이 바글거릴 일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색적인 풍경은 있습니다. 그 오전 10시의 황량한 시간대에도 술에 여직 취해있는 사람들이 길거리 곳곳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것이죠. 오전 10시의 만취상태라,, 최소 12시간 동안 음주에 쩔어 있는 자들일텐데, 저는 어쩌면 매일 아침 좀비를 목격하며 지나다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젊음의 시간을 지나고 있기에 이 시간에 이 사람들은 이 공간에 존재할까? 라는 부러움 섞인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저는 사무실로 저벅저벅 걸어갑니다. 몸은 저보다 피곤할 지언정 그들의 표정은 분명 동태눈깔의 저보다 밝아 보이니까요. 수 개월전만 해도 저도 밤새 술마시고 알코올 기운으로 아침 해를 맞는 사람 쪽에 속했는데, 이젠 출근길을 저벅거리는 인간이 되어버렸네요. 아니 어쩌면 좀비는 제 쪽일 수도 있겠습니다. 누구보다도 눈에 영혼이 실려 있지 않으니까요. 양극의 사람들은 결국 닮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알콜에 의존하며 밤을 놀며 지새우는 사람들이나 카페인에 의존하며 낮을 일하며 지새우는 사람들이나, 우린 서로에게 좀비처럼 보이겠지요.
퇴근길의 홍대는 또 다른 의미의 카오스입니다. 일단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요즘은 또 코로나 분위기가 시들해져서 버스킹도 원래대로 진행이 되기도 하고, 거리의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옵니다. 저녁7시의 홍대거리는 오전10시의 홍대거리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라, 가끔은 내가 같은 곳에 들어가고 나온 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겨우 홍대입구역 근처에 도착하면 또 아이러니한 공간을 목도하게 됩니다.
홍대입구역 9번출구 50미터 앞. 공공연한 비공식 흡연구역이 있죠. 웃긴 점은, 그 공간 주변 벽에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글씨로 ‘금연’이라고 적혀 있다는 점이에요. 그치만 모두가 그 곳에서 담배를 피워냅니다. 바닥에는 태산같은 꽁초들이 쌓여있고요. 다수의 인간은 그렇게 공간을 재정의합니다. 텍스트는 행동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 길을 지날때면 시야는 회색 빛이 됩니다. 이런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그 아이러니한 길목을 지나면 드디어 목적지이자 출발지인 홍대입구역이 나옵니다. 출근길보다도 더 좀비같은 모습으로 저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래도 늦은 퇴근시간의 장점은 앉아서 2호선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목요일도 생각보다 버틸만 하네요.
오늘도 수영에 갑니다. 물속에서 놀다올게요
내일 또봐요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6일 PM 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