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부터 다섯시간, 스물한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금요일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수영을 버무린 첫 일주일을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확실히 수영을 시작하니까 수면의 질이 높아졌습니다. 좀 더 깊게 잠에 드는 것 같고 일어날 때도 잔여된 수면감 없이 조금은 개운하게 눈이 떠집니다. 물론 그럼에도 언제나 아침 침대는 매혹적이지만요. 그리고 뭐랄까 건강을 조금 더 의식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수영가는 날에는 무조건 흡연을 참아내는 것이죠. 꽤나 미약하지만 장족의 발전입니다. 원래 스트레스 조절을 명분삼아 스스로에게 하루에 한 개피씩을 허용했는데, 그마저도 격일로 줄인 셈이 되니까요. 수영을 하니까 호흡에도 신경 쓰게 되고, 더 길게 헤엄치고 싶어서 폐활량을 고려 안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10년만에 수영을 해서 그런지, 그 사이에 세미스모커가 되어서 그런지, 확실히 예전 수영장에서의 수영보다 몸도 무겁고 호흡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합니다.
어제는 오리발을 들고 한 첫 수업이었습니다. 상급반의 특혜이기도 하죠. 여러분은 혹시 오리발을 쓰고 수영하는 단계까지 진입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오리발을 사용하면 정말 헤엄이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발차기 몇번만으로 벌써 반대쪽 까지 금새 닿을 수 있고, 그럴 때면 마치 인어나 물개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물 속에서의 자유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오리발을 꼈다는 전제하에 하는 잠영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잠영은 수영장 한쪽 끝부터 반대편까지 잠수한 채로 접영 웨이브를 지속하며 가는 영법인데요, 보통 바닥에서 25센치만 떨어진 채로 완전히 납작하게 붙어서 전진합니다. 꿀렁꿀렁 시선은 바닥에 고정한채로 오리발로 힘차게 발차기 웨이브를 하고 있으면, 바닥 타일의 모양이 쏜살같이 시야를 지나갑니다. 그 속도와 쾌감이 너무 짜릿해서 모든 근심들이 다 썰려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25미터를 한번에 잠수해서 지나가는 건 솔직히 아직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10여년전에 수영생활을 지속 했을때에는 수련을 갈고 닦아서 아주 쉽사리 성공해냈지만, 어제는 조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3분의 2지점에서 수면위로 올라와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얼른 체력을 다시 되찾아서 잠영에 성공하고 싶네요. 긴 꿀렁거림 끝에 수면위로 풍덩 올라와 몰아내쉬는 숨은 수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쾌감중에서도 상위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슬픈 일이 있습니다. 제 하체가 문제인데요. 지난 편지에서 접영을 시도하다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서 잔뜩 알이 베겼다고 언급했습니다만, 어제는 나머지 오른쪽 종아리도 같은 방식으로 잃었습니다 :) 접영을 할때 손동작을 하기위해선 피치 못하게 하체에 힘이 잔뜩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바짝 힘을 당겨쓰니까 자꾸 종아리 쪽에 알이 뭉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접영은 고사하고, 평영 손동작과 접영 발 동작을 혼용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니, 체질적으로 쥐가 잘 나고 뭉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어쩔 수 없이 조절해가며 조심해야한다고 하시더군요..
또한, 오리발을 착용하니까 발목이 심히 삐그덕거렸습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발목이 약하게 태어나서, 실제로 발목을 손으로 잡고 앞으로 빼면 쉽사리 빠집니다.. 뚝 뚝 소리도 잘 나고요. 이런 사유로 성인이 되곤 깁스도 자주했고, 발레를 할 때에도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발레 동작 중에 포인이라고 발목을 앞으로 확 꺾어서 발가락을 접는 동작이 있는데, 이건 제가 심하게 잘하긴 했습니다. 근데 선생님께서 발목에 무리가 갈 것이라고 자제하라고 하시긴 하셨지만요.) 아무튼 발목이 원체 약하다보니 조심해야하는데, 오리발이 꽤나 무겁고 발 헤엄은 물의 저항을 받다보니 어제도 무리를 좀 했던 것 같습니다. 요령이 더 생겨서 발목말고 허벅지 힘을 써야하는데 말이죠.. 이런 식으로 적어내리면서 수련을 거듭하면 저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밤 10시가 훌쩍 지나있습니다. 당연하게 하늘은 어둡고, 날씨는 제법 쌀쌀합니다. 이렇게 시큰쌉쌀한 계절, 그래도 아직은 버틸 만한 적당히 시원한 온도. 트렌치 코트의 적기입니다. 이 찰나를 놓치면 올해의 트렌치 시즌을 영영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랴부랴 제 애착 트렌치를 열심히 입고있습니다. 작년엔가 재작년쯤에 산 검은색 트렌치인데, 입으면 묘하게 엣지가 살아나는 것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 겉옷입니다. 이런말 너무 허세 같지만, 트렌치 코트를 입고, 좋아하는 최애 부츠를 신고 흡연으로 한숨을 피워내면, 그렇게도 스스로가 멋져보이고 나도 나에게 반할 것 같달까요.. 죄송합니다. 영화 ‘윤희에게’를 너무 열심히 봤나봐요. 아무튼 가을과 트렌치는 한정적이고 희소하기 때문에 더 갈망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때를 놓치지 않길 바랄게요.
가을이 옆에 있으면,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우리는 늘 바로 옆에 있는 계절을 슬쩍 무시하고 꼭 남은 계절들을 탐내곤 하니까요. 마치 여름에 바라는 찬 겨울과, 겨울에 바라는 따사로운 여름처럼요. 가을은 비교적 사랑받는 편이긴 하지만, 저는 이왕 추울 거 완전히 추워버린 겨울이 좋긴 합니다. 사실 전 목도리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프로페셔널하게 패션에 멋부리는 것에 약해서 매번 옷 챙겨입는게 골칫거리인데, 겨울엔 대충 엣지나는 코트에 좋아하는 목도리만 걸쳐주면 들인 노력에 비해 꽤나 그럴싸한 것이, 봐줄 만 하거든요. 얼른 목도리를 하는 계절이 오면 좋겠습니다. 꼭 겨울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만요. 올해도 아마 새로운 목도리를 사게될까요?
금요일입니다. 내일이면 잠시 서울을 떠나있겠네요. 몇푼이라도 아끼려고, 일찍이 여행을 시작하려고, 여러 이유들로 무자비하게 부산행 아침비행기를 끊었습니다 오전8시에 비행기를 타게 되겠네요. 그말은 즉 굉장히 일찍 기상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제가 별난리 안치고 일찍이 잠들기 바랍니다. 비록 아무래도 오늘이 불금이지만, 제 주말은 오늘의 불금보다도 훨씬 뜨거울테니까요.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7일 PM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