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부터 다섯시간, 스물두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올해 마지막 빨간날의 연휴가 우리를 떠났네요. 저는 어젯밤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짧고 굵게 부산을 즐기고 돌아왔는데, 2박3일은 감질맛 나면서 아쉬움과 만족감이 적절히 느껴지는게, 여행으로 나쁘지는 않은 기간인 것 같습니다. 다른 어떤 주제들보다 저의 지난 부산행을 글로 써내려가는 것이 가장 시의적절할 것 같아 기억력이 말랑말랑히 살아있을 때, 한자한자 적어내려보겠습니다.
영화제를 하루 앞두고도 지난 금요일에는 퇴근 후에 영화를 또 보러갔습니다. 광화문에 위치한 에무시네마. 오랜 기간 팔로우만 해놓고 정작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영화 “아말리에”가 상영한다길래, 이번에야말로 꼭 가고 싶었습니다. 과외와 수영으로 평일의 월화수목은 퇴근 후에도 곰짝없이 동네로 곧장 향해야했기때문에, 제게 금요일은 몇 안되는, 제가 주무를 수 있는 자유시간이거든요. 버스 한방이면 홍대에서 광화문까지 재빠르게 이동이 가능했고. 저는 에무시네마에서 “아멜리에”를 보는데에 성공합니다. 왜 성공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실은 예전에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시도로만 끝난 이유는 중간에 처참하게 잠이 들었기 때문이죠. 프랑스 영화 특유의 루즈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전 항상 그때마다 맥을 못 갖추고 쓰러지곤 했으니까요.
특히나 내 방 내 침대에 삐딱하게 누워서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들은 긴장감을 다소 없게 만들어서, 중간에 핸드폰도 만지작 거리게 되고, 간식도 쉴새 없이 입에 넣고, 중간중간 화장실 간답시고 일시정지를 남발하기도 하고, 뭐 이것저것 집중하기 힘든 환경인건 맞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선 제게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오롯이 100을 다 감상하고 올 수 있기 때문이죠. 아멜리에는 생각보다도 더 만족스러웠습니다. 요즘 한창 프랑스 영화에 재미가 들려있기도 했고, 여주인공이 제가 좋아하는 “무드인디고”의 여주인공과 같은 배우인데, 사랑스럽다는 말 그 자체인 배우이기 떄문이죠. 하여간 프랑스사람들. 묘하게 사랑스러운 또라이 같은 구석이 있어요. 무드인디고와 아멜리에를 연달아 보시게 되면, 이 말 뜻을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에요.
퇴근 후 8시반부터 보기시작한 영화는 열시반이 넘어서야 끝이 났고, 광화문을 조금 거닐고 집에 들어가다보니, 도착하니 열두시가 다 되어 갔어요. 전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8시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말이죠. 부랴부랴 급히 부산행 짐을 싸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5시반에 이른 기상을 해서 오전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7시 15분이 되었고, 7시 25분까지 체크인을 해야한다고 알림이 왔었던 터라, 황급하게 걸음을 서둘렀는데 안정적으로 도착하는데에 성공했습니다. 연휴의 시작날이라 그런지 공항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습니다. 와중에 꼴에 올해 비행기 좀 여러번 타 봤다고, 모든 수속들이 제겐 너무 익숙한 거 있죠. 덤덤하게 줄 서고, 이젠 요령도 생겨서 어느 쪽이 빨리 빠질지도 간파가 가능하고. 후다닥 속전속결로 해치운 뒤, 여유롭게 화장실도 가고, 그렇게 부산행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50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잠에 살짝 들었다 눈을 뜨면 곧바로 도착이더군요. 그렇게 내린 부산김해공항에선 너무도 반가운 친구가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날엔 두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두 편 모두 프랑스 영화였죠. 낮에 본 작품은 <러브, 달바> 였고 밤에 야외상영으로 본 작품은 <어느 짧은 연애의 기록> 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본 작품이 매우 인상깊게 남습니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클리셰를 따라가면서도 그걸 자주적으로 부쉈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제 자체는 근친상간과 관련된 다소 무거운 편의 것이었는데, 여성감독이 연출을 해서 그런지 꺼려지는 주제에 비해 불편함 하나 없이 편하게 감상했습니다. 첫 장면부터 문제의 아버지가 잡혀가고, 홀로 남은 달바가 시설에 들어가고 새로운 세상으로 편입을 하며 겪는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양상이라, 우려되던 불쾌한 씬도 전혀 없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재판장의 모습이 비춰지면서 끝이 나는데. 영화를 통틀어 달바와 아버지가 함께있는 장면이 첫장면과 마지막, 그리고 중간에 면회를 간 장면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정말 근친은 단지 소재로만 가져가는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그리고 달바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런 늙은남자 어린여자 구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느낌이라 이마저도 통쾌했습니다. 앞서 말한 프랑스 클리셰는 바로 늙은 남성과 어린 여자의 로맨스 구도를 말한 것이었고, 이를 영화 자체적으로 비판하고 까는 느낌이라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입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감독의 인터뷰 영상에서도 이 영화는 “상처”와 “고통”에 주목하기 보다 “재건”과 “회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말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겠습니다.
첫날은 두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고 너무 피곤해서 바로 숙소로 돌아갔네요. 무엇보다도 야외상영이 조금 힘들었어요. 날이 은근 쌀쌀했고 앉은 의자도 불편했고요. 그보다 그 영화마저 얼마나 프랑스영화같던지요, 이번에는 불륜과 오픈릴레이션십에 관한내용이었습니다. 허허. 유부남과 싱글맘이 눈이 맞아 불륜관계에 이르게 되는데, 와중에 여자는 남자한테 진지한 마음까지는 없어 오픈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죠. 벌써부터 머리아플 소재투성이지 않나요? 이게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 적는게 꺼려지다가도 어차피 평생 이 영화를 보실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적어보겠습니다.
만약 이 “어느 짧은 연애의 기록”에 구미가 당겨 보시게 될 것 같으면 앞으로의 문단은 건너 뛰셔도 좋습니다. 암튼 이 영화는 중간중간의 유머가 너무 웃겼어요. 남자가 너무 찌질하게 나오거든요. 여주는 좀 멋지게 비춰지긴 합니다. 결론적으로 해피(?)엔딩이라 봐야할까요? 두 사람의 불륜아닌 불륜관계는 끊어집니다.
남자가 3주정도 여행을 다녀온 사이 여주는 인터넷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 추가적으로 초대했던 여성과 사랑에 빠져 애인이 되고 말거든요. 남주는 뭐 가정이 있던 사람이니 원래 가정에 충실하게 돌아가게 되겠죠. 와중에 남자는 여행에 돌아와서 이 모든 전개를 알게 된 후에도 여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습니다. 처절하게도 말이죠. 모쪼록 프랑스다운,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연애사 이야기입니다.
이 복잡한 영화 내용 와중에 좋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그리고 연애는 괄호와 같아서 열림이 있었으면 꼭 닫힘 기호를 필요로 한다”
어떤 해괴망측하고 지랄맞은 사랑이건 마무리는 잘 해내길 바랍니다.
나머지 두편의 영화감상과 부산 바닷가의 감상, 그리고 전체적인 이 휴가의 온 마음들은 내일의 편지에서 가능하다면 마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날이 춥습니다. 이제 가을도 없는 것 같네요. 겨울맞이 잘 하시길 바랍니다.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11일 PM 17:23